등록 : 2006.02.09 16:38
수정 : 2006.02.12 15:52
동아시아는 지금
지난해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이 354만명으로, 국별 중국 방문자수에서 처음으로 일본인들(339만명)을 제치고 1위가 됐다고 한다. 전체 중국방문 외국인의 17.5%라는데, 한국관광공사 자료로는 그 수가 296만명이다. 이는 제3국 방문자로 출국해 다시 중국에 입국한 사람들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결과로 추측된다.
이에 비해 일본방문 한국인수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약 160만명이었고, 이 역시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가운데 국적별로 가장 많은 수였다. 같은 기간 한국을 찾은 일본인수는 약 234만명.
해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나라는 오랫 동안 일본, 미국 순이었으나 2001년부터 중국, 일본순으로 바뀌었다. 그해 중국을 찾은 한국인은 129만명, 일본에 간 한국인은 116만명으로 처음으로 중국이 일본을 제쳤으며, 이후 그 추세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것은 1992년이었고, 그 전에 양국간 사람 교류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한-중간 인적 교류는 채 10년도 되지 않아 분단과 냉전체제 이래 반세기 이상 동맹국 또는 사실상의 동맹국 지위를 누려온 한-미, 한-일 간의 그것을 넘어선 셈이다. 실로 삽시간의 일이다.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 같은 서구 우월주의자들은 중국이 미국 경쟁국으로 떠오를 경우 동아시아 각국이 중국으로의 쏠림 현상을 일으킬 것이라며, 그것을 유럽과 같은 성숙한 서방에 미치지 못하는 동아시아의 미숙함 또는 복잡하고 이질적인 문화와 역사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건 편견이요 사시다. 1세기 이상 지속된 동아시아의 불안정과 미숙, 그리고 냉전붕괴 이후 중국으로의 지역 쏠림현상은 동아시아 고유 속성이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와 그 편에 서서 무자비하게 이웃을 유린한 일본 근대의 죄업이 낳은 재앙의 치유 과정이라는 게 더 타당해 뵌다. 조선과 베트남은 오랜 세월 중화라는 ‘세계체제’에 속했으나 독립을 유지했다.
미국이 한국인 방문 비자 면제 논의를 본격화하자 그동안 이런저런 구실로 뭉기적대던 일본이 재빨리 한국인 관광·상용 단기방문 비자를 면제하겠다며 선수를 쳤다. 예전에 미국 탁구팀이 중국에 들어가고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전격 방문했을 때도 미국보다 먼저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건 일본이었다. 일단 대세가 그렇게 굴러간다는 감이 서면 일본은 정말 잽싸게 올라탄다.
헌팅턴이 걱정했듯이, 동남아도 그렇지만 한국의 중국 쏠림, 북한의 중국 쏠림은 미국 일본에겐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미국 일본이 한국인 방문객에게 비자를 면제하려는 것은 한국이 마침내 그 무슨 면제 조건들을 충족시킬 만큼 변해서라기보다는,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중국 쏠림이 초래할 정세 유동화와 그로인한 걷잡을 수 없는 불이익을 우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혹시.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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