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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9 16:58 수정 : 2006.02.12 15:53

역사로 보는 한주

1898년 2월15일 쿠바 아바나만에서 미 해군 함정 메인이 폭발, 침몰해 260명의 승무원들이 숨졌다. 이 사건은 새로운 제국 미국의 등장을 알린 미국-스페인 전쟁(미-서 전쟁)의 시발이었다.

메인의 폭침은 연료인 석탄의 폭발 탓이라는 설 등이 있으나 아직까지도 확정된 정설이 없다. 그러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저널>, 조지프 퓰리처의 <뉴욕 월드> 등 당시 황색 저널리즘의 첨단을 달리던 미국 신문들은 비열한 스페인인들 짓이라며 호전적인 애국주의를 부추겼다. 그러나 이빨빠진 호랑이 처지였던 황혼의 제국 스페인은 전쟁을 벌일 처지도 아니었고 의지도 없었다. 그럼에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그해 4월11일 내전 종결을 명분삼아 쿠바에 미군을 파견하는 전쟁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4월19일 미 의회는 ‘쿠바의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그때 미국은 서부 프런티어로의 확장이 종료되고 ‘인디언 사냥’도 거의 끝나 육군은 할 일이 줄고 무게 중심이 옮겨 가고 있던 해군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필리핀의 스페인군을 몰아내기 위한 작전계획을 짜 놓고 있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20여년만에 세계 최대의 산업국으로 성장하고 있던 야심만만한 미국은 그렇게 해서 스페인군을 격파하고 그 식민지였던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를 먹었고 곧 쿠바도 삼켰다.

필리핀 점령 때 미군은 홍콩에 망명중이던 필리핀 독립영웅 에밀리오 아기날도에게 독립시켜주겠다고 약속해 앞장세우고 득을 본 뒤 바로 배신했다. 파리 강화조약 때 미국은 스페인에게 2천만달러를 주고 필리핀 영유권을 양도받았는데, 그때 매킨리는 “필리핀 섬들은 미 합중국의 자유로운(!) 깃발 아래 두어야 한다”는 후안무치한 성명을 발표했다. 아기날도 등이 저항하면서 미국-필리핀 전쟁이 시작됐으나 얼마 안가 필리핀은 미국 식민지가 됐다.

쿠바 점령 때 기병연대 중령으로 용맹을 떨친 전쟁영웅 중에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있었다. 일본 무사도 예찬자였던 그는 제26대 미 대통령(1901-1909)이 돼 1905년 러-일전쟁이 일본에 유리하게 종결되도록 애쓰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필리핀에 대한 독점권을 보장받는 대신 조선을 일본에 넘겼다. 전쟁 종결을 위한 포츠머스조약 체결 중재를 위해 애썼다는 이유로 이 전형적인 제국주의자는 19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단군은 일본 왕실 조상 아마데라스(오오미카미) 동생의 아들이었고 조선은 3세기부터 8세기까지 일본 속국이었다고 주장한 오카쿠라 덴싱의 <일본의 각성>, 조선인들을 죽어가는 야만인이라고 한 니도베 이나조의 <무사도> 따위의 황당무계한 ‘메이지 선각자들(!)’ 요설에 감동해 “얼간이 조선인들”은 일본 지배를 받아도 싸다고 했던 루스벨트를 지금도 높이 평가하는 ‘얼간이’들이 이땅에는 꽤 있는 것 같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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