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09 18:53
수정 : 2006.02.12 15:56
말글찻집
저마다 ‘행복’을 찾아 잘살고자 하지만, 실제로 사회를 건전하게 지탱하는 덕목은 ‘믿음’이다. 이 말도 ‘행복’만큼이나 거품이 낄 때가 많다. 개인이나 집단 두루 믿음이 큰 힘을 내기도 하고 송두리째 허방에 빠뜨리기도 한다. 요즘도 그 거품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믿고, 여기고, 알고, 보는’ 것은 서로 통하기는 하나 차이가 적잖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믿다’ 쪽으로 쏠려 쓰는 일이 잦은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믿다’가 들어가 어색해진 보기들이다.
△그들은 다소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일까? △곧 추위가 몰아닥칠 것을 믿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그럴듯해서 진실이라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난치병 환자 및 가족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최근까지 줄기세포가 있다고 믿었고, 이를 줄기세포허브를 통해서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저의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일해 왔다 △그 짝퉁 꽃을 보며 다가섰던 내 자신을 원망하듯 정말 아름답다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이란 △신들은 인간과 동일한 생리를 가졌다고 믿었다 △그게 사실이 아님을 믿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친구를 적인 줄 믿고 내쳤으니 알조다 △그가 실패하리라고 믿은 사람은 없었다 △실험이 시작된 동기가 줄기세포가 수립됐다고 믿었기 때문인지도 밝힐 계획이다. 검찰도 서울대 연구팀의 쥐 실험은 줄기세포의 존재 사실을 믿었다는 정황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믿다’붙이는 대체로 “알다·생각하다·판단하다·여기다·이해하다·보다·확인하다·오해하다 …”들로 바꿔 써야 할 말들이다. 통상 하는 말에서 과학자와 일반인의 말이 다를 수야 없겠으나, 특히 실험·통계·이론과 실물로 나타나는 분야를 두고서 하는 말은 좀더 정밀하고 실체적이어야 할 터이다. 그런 점에서 ‘믿다’는 과학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묻다’ 쪽이 걸맞다.
한편으로 ‘진정이다·속았다·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동원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말에 가깝다.
믿음에 대체할 말로 ‘신앙·신뢰·확신’들이 있는데, ‘바람’이 희망·기대에, ‘기쁨·즐거움’이 ‘행복’에 눌리는 것처럼은 ‘믿음’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편이다. ‘믿음·믿다’ 거품에는 영어(belief·believe)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본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