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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제일기획 스페이스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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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마크’ 받으려 지친 삶
박민규의 지껄임에
훌쩍 먼 여행을 떠났다
진정 나를 만나러
나는 이렇게 읽었다/박민규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난 비행기에 올랐고, 가볍게 창공으로 날았다. 아무도 날 잡지 않았고, 어딜 가는지 묻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각자의 일에 분주했다. 내가 떠나면 무슨 큰 일인가 벌어질 것 같아 내 발목을 붙들었던 건 그럼, 바로 저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던가. 비행기 창에 머리를 대고 좁쌀처럼 작아진 집들을 내려다 보았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어쩌면 사회는 우리가 더 많이 소유하고 익숙해져, 변화를 두려워하도록 길들이는 것일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길들여진 것일까? 사회의 생·존·본·능. 동물의 그것처럼 사회도 그렇게 하나의 생명체처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리라. 사회 자신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 위한 몸부림. 그러니까 나는 지쳐 있었다. 뭐 특별하게 이야기꺼리도 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삶에. 항상 무언가 보람되고 알차고 훌륭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살아온 삶, 우린 그렇게 자라왔다. 공부도 잘해야 하고, 대학도 잘 가야 하고, 일도 프로처럼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말이다. 한번 제대로 고민해보지도 않은 그 기준에 맞추어, 우린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고, 자만하고, 좌절하면서 살아왔다. 그래, 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사회가 보기에 난 ‘KS마크’였다.
돌아보면 나는 한번도 내 기준을 위해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치열하고 바쁘게 살았고, 가끔 머리가 아파도 “두통은 열정의 산물”이란 멋진 말을 믿으며 진짜로 멋·있·게 살려했다. 사회는 나의 그런 삶을 “프로”라는 이름으로 평가해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을 하지 않는 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삶의 공허함은 가랑비처럼 깃털을 적시고, 어느 날 그 무거운 날개로는 날기는커녕 걷기도 힘들다는 걸 알았다. 지금의 우리에게 도대체가 치열하게 싸워야 할 그 무엇은 오로지 ‘돈’밖에 없는 것만 같았다. 텅빈 가슴, 명분없는 삶이어라.
박민규의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은, 바로 내가 느끼던 그 모호한 절망감이 말기에 이르렀을 때쯤이다. 박민규는 도대체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가벼운 말투로, 그렇게 희희낙낙 나에게 지껄이듯 말했다. 그의 글을 애써 어려운 말로 평론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간장게장도 ‘프로’여야 하는 이 힘든 세상에서, 그는 1할2푼5리의 승률로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그냥 위로의 박수가 아니고, 진짜 잘 하고 있다는 감격의 박수를.
뭔가 내 인생에 대책이 필요했다. 난 사표를 던지고 그렇게 무작정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올른 것이다. 모든 길의 시작이라는 로마.
“쉬엄쉬엄 밴드연습도 하며, 밥 먹고 글 쓰고 놀며 나무늘보처럼 지내고 있다. 누가 물으면, 창작에 전념한다고 얘기한다. ‘말로는 뭘 못해’라고 모두를 방심시킨 후, 정말이지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글쎄, 나는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나가 이렇게 지냈다. ‘쉬엄쉬엄 여행도 하고, 엄마 자궁 속에 틀어박혀 밥 먹고 잠 자고 노는 태아처럼 그렇게 아홉 달을 지냈다. 누가 물으면, ‘무위도식 중’ 이라고 모두를 방심시킨 후, 정말이지 처음으로 열심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 아홉 달의 휴식 후,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난 5년간 해오던 똑같은 일을 다시 시작했다. 주위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나의 복귀를 반가워했고, 어떤 이들은 “결국 너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이 현실로 돌아오는구나”라고 실망했다. 하지만 박민규의 말처럼 “세계는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내 주변의 우주를 구성하는 것들은 여전히 똑같다. 하지만, 이제 내게 있어서 그 배열은 달라졌다. “관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 뛰지 않는 것. 속지 않는 것.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우리의 관건이다. 어차피, 지구도 멸망한다.” “당신, 정말 프로군요”를 칭찬으로 여기는 당신, 항상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힘들게 살아온 바로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나의 ‘깔짝’, 이 불충분한 예고편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진다면, 당신은 분명 박민규의 ‘본편’을 이해할 것이다. 예고편에서 핵심을 말해주는 것은 에티켓이 아니다. 난 프로는 아니지만 적어도 에티켓은 있는 인간이고, 공감과 감동은 단지 각자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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