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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후 예수
제롬 프리외르,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이상용 옮김. 한언 펴냄. 1만9000원 |
사도행전·바울서신 등 예수 사후 문헌 파헤쳐
그리스도교가 어떤 모순·왜곡 거쳐
새로운 종교로 확산되었는지 따져
앞뒤 맞지 않는 복음서 내용 근거로
성서는 역사가 아니라 상징적 문학이라 주장
“예수는 최하류층의 보잘것없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인으로 살다가 유대인으로 죽었다. 예수 자신이 기록으로 남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복음서들은 예수의 말, 잠언, 설교 등을 재구성하고 있지만 그것은 예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의견을 말하는 저자들의 입장이다. 그의 제자들 중 일부가 그의 부활을 주장하면서 그를 그리스도로 내세운 것이다. 이것이 바울 서신의 핵심이고 바울이 믿는 것이며 그가 기록하고 있는 이유다. 그후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토라와 시편, 선지서를 참고해서 역사를 만들었고 결국 30년에서 150년 사이에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진정한 이스라엘’을 주장하면서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
바울 등 제자들이 만들어낸 예수
<예수 후 예수>(한언 펴냄)의 저자들은 예수의 죽음 후 몇해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사도행전과 신약성서의 가장 오래된 문헌인 바울서신의 내용을 파헤치면서 예수의 모친인 마리아와 제자들의 수장인 베드로,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의 역할이 무엇인지, 특히 예수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는데도 사도임을 자처하는 바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따진다. 동시에 그리스도교는 어떤 모순과 왜곡, 환상 등을 통해 새로운 종교로 전해질 수 있었는지,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본다.
예수는 모든 사람들한테 버림받은 채 치욕스럽게 죽었고 그의 말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나님 나라가 오지도, 이스라엘 왕국이 재건되지도, 로마인들이 쫓겨가지도 않았다. 제자들은 흩어져 사형집행 현장의 군중 속에서조차 보이지 않는다. 수난의 자리에 있었던 여자들에 대한 언급은 주검이 없어졌음을 발견하는 것을 위한 준비일 따름이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의 신원에 대한 답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베드로의 답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8:29)는 예수가 은연 중에 받아들였으나 돌발적인 것에 불과했다. 예수는 출생조차 근친상간으로 보이는 성폭행의 결과라는 인상을 준다(62쪽). 그의 평범한 어머니 마리아(마가)는 마태에 의해 동정녀가 되고 누가에 의해 신을 남편으로 하며, 요한에 이르면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로 꾸며진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기는 복음서보다 앞선 고린도전서에서 보이는 바울의 신앙고백에서 비롯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고전6:14)라며 이를 환기하고,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를 통해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고 말한다.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예수를 주라는 호칭으로 거듭해서 언급하는 것과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 표현에 내재된 모호함은 예수의 신격화의 발판이 된다. 110년경 비티니아의 총독 플리니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에게 하듯’ 예수에게 찬송가를 부른다고 보고하고 있다. 90년께 쓰여진 요한복음에 이르면 예수는 메시아일 뿐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자로, 성부의 아들이 육신을 빌려온 신으로 그려진다. 그리스도교 저술들은 토라와 시편, 선지자들의 문헌에 의거해 예수에게 그리스도나 메시아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유대교와 결별한 그리스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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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그리스도교 창시자가 아니다. 바울을 비롯한 일부 추종자의 견해가 반영된 편지와 복음서 등이 몇 차례의 공의회를 거쳐 경전으로 채택되면서 성립한 게 그리스도교다. 따라서 집필된 순서에 따라 성서를 짚어가면 그리스도교가 만들어지는 과정, 즉 환상, 굴절, 왜곡 등의 모양새를 읽을 수 있다. 그림은 사도 아닌 사도로서 초기 그리스도교 성립에 큰 몫을 바울이 사울이란 이름으로 다메?r으로 가는 도중 예수를 만난 순간을 묘사한 카라바조의 ‘성 바울로의 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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