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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각/소설가, 풀꽃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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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죽이고 제멋대로 하면
인간 외 생물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
들의 정령들 어떤 야습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반드시 불길한 일이 벌어질 거다
녹색 에세이/달려라 냇물아
“새만금 갯벌과 그곳의 뭇 생명, 철새들과 어민들, 이 모든 새만금 생명들이 지구라는 큰 생명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서 헤일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제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 사라지려는 것이다. 이처럼 지구 생명에 치명상을 입히고도 인간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씀하신다.”
누가 이토록 쉬운 말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말씀하셨을까. 박경리 선생님이시다. 지난 1월, 원주에서 박경리 선생님을 만난 이부영 전 의원이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 내용이다. 큰 작가는 먹물들이 어렵게 하는 이야기를 삼척동자도 알아듣도록 쉬운 말로 하신다. 직접화법은 아니지만, 박 선생님의 말씀을 좀더 들어보자.
“최근 우리나라에서 자행된 가장 큰 지구생명 죽이기 사례가 새만금 물막이 공사라고 강조하신다. 그 드넓은 새만금 갯벌에서 나오던 소출이 그곳을 농지나 다른 용도의 땅으로 개발하여 얻는 소득보다 더 많을 텐데도 굳이 갯벌을 없애겠다는 계산법을 이해하지 못하시겠단다. 오래지 않아 물막이 안의 민물이 시화호의 경우처럼 다시 썩으면 또 물막이를 트려는지, 갯벌은 죽이고 예산은 바닷물에 흘려 보낸 채 또 물막이를 트려는지, 그러고도 시화호 때 그랬듯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지나가겠다는 것인지, 한심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고 하신다. 북반구에서 매년 남반구로 가거나 이곳 한반도에 와서 겨우살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철새들의 삶의 터전은, 아니 그보다도 그 갯벌에서 누대에 걸쳐 고단하지만 행복하게 살아오던 어민들의 삶의 터전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답답하고 분한 마음이 차오른다고 하신다.”
환경판의 시위현장에서 더러 만나곤 했던 이부영씨는 그의 정치적 위상에 대해선 아는 바도 관심도 없지만, 환경문제의 핵심에 대한 인식을 지니고 있는, 드문 정치가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답답하고 분한 마음이 차오른다”는 박경리 선생님의 마음이 전염되었을까, 문득 얼마 전 발간된 다카기 진자부로의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녹색평론사)에서 만난 ‘들놀이 노래’가 생각난다. 이 노래는 일본의 나리타공항 건설에 반대한 농민운동인 산리즈카(三里塚) 투쟁 때, 시마 히로유키라는 청년에 의해 불려진 노래다.
“인간도 그렇지만, 작은 동물이나 독벌레처럼 흙과 살아온 것일수록 쉽게 죽어버렸고 추방된 것 같다. 도대체가 땅을 죽이고 그것을 제멋대로 하면서 인간은 다른 세계에서 살면 된다는 주제넘은 생각에 대해서 인간 이외의 생물들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지 역습할 수 있지. 반드시 불길한 일이 벌어질 거다. ‘노즈치’(들의 정령)의 무리들이 어떠한 야습계획을 꾸미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 우리 대지 위에 사는 사람들 모습과 이 풍경이 허물어지고 죽어가는데, 또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반인간적 정경. 그 하나하나에서 들녘을 달리는 신(神)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놈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하략).”
‘들녘을 달리는 신(神)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놈들’이 거기뿐 아니라 여기에도 너무나 많아 이 청년의 탄식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 책을 만나던 즈음, 환경판의 누군들 그렇지 않았겠는가만, 30㎏도 안 되는 육신으로 죽음의 강을 건너기 직전의 지율 스님 생각으로 늘 편치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의 운동방식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삼시세끼 잘 챙겨먹으며 멀쩡한 육신으로 일상의 그렇고 그런 희로애락 속에 잠겨 있다는 죄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가 단식을 하고 있는 한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노래를 만나든, 그에게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율 스님은 이제 일산에서 광주로, 다시 인근 사찰로 옮겨져 생의 의지를 강하게 표하고 있다니 천만다행이다. 천성산 문제나 새만금 문제나 사태가 터진 시간차만 있을 뿐 그 내용이나 진행과정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 ‘환경영향평가 제대로 하자’는 단순한 요구를 묵살하고, 고속철도시설공단측이 고용한 알바들을 동원해 스님을 ‘초록의 공명(共鳴)’을 공명심(功名心)의 수단으로 삼는 요승이라고 매도하며 모욕한 일이나 한국농촌공사 새만금사업단이 새만금을 죽이기 위해 여러 해 동안 벌인 편법과 거짓말과 조작의 작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설해(雪害)로 사람들이 울고 있는데도 새만금 죽이기로 결정한 법원 판결에 환호작약하던 사람들은 새만금 메워 이익을 얻을 사람들이지 결단코 전라북도의 서민들이 아니다. 인류가 산업사회로 돌입한 이래 개발로 현지 토착민이 이익을 얻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곧 판명될 일이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이재용 환경부장관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새만금 사업의 경우 농림부와 전라북도에서 공식적으로 간척지를 농지 외에 관광·산업 단지로 개발하는 것에 대해 요청해 온 적이 없다”며,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의 우수한 갯벌을 간척지로 만들 때 ‘농지로 만들자’는 것이 국민적 합의였기 때문에 그 합의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거역하기 어려운 대세를 전제로 한 말이지만, 무기력하기만 했던 전의 장관들과 다르다. 새만금 메우자는 토호세력들이나 토목건설업자들과 칡덩굴처럼 얽혀 있는 정치가들이 농지가 생겨서 그토록 환호하고 있을까. 장관이라는 한계 속에서 나온 말이지만, 이 장관의 말은 이 땅에 그나마 있던 논이 급속히 사라지는 것을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만금 사업이 곧 허구요, 거대한 국민사기극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직언으로 들린다. 해수유통에 대한 그의 바람은 현실권력 속에서도 그가 시민운동가 출신으로서의 양심을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그가 아무나 나오는 광역시장 같은 선거판에 내몰리지 말고, 임명권자에게 잘리기 전까지 그 자리에서 오래 버티며 안간힘을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깊다. 들의 정령들이 내는 소리가 별 것일까. 들녘의 신들은 우리더러 늦기 전에 정신차리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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