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16 17:25
수정 : 2006.02.17 16:50
말글찻집
말글에서도 ‘세계화’의 영향이 숱하게 나타난다. 전에 듣기 어렵던 아프리카·아랍·남미 쪽도 그렇지만, 한동안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러시아 쪽도 그렇다. 러시아는 20세기 초반에만도 조선인들이 쫓겨가 살거나 독립운동 근거지로 삼았고, 그래서 우리 소설에서도 땅·사람은 물론, 일반용어들이 꽤 쓰였다. 그러다 19세기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푸시킨이나, 20세기 후반의 솔제니친 등의 소설을 통해 이따금 그쪽 풍정을 만났던 처지였을 뿐 50년 가까이 사람들의 발길도 말길도 막혔다.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개혁·개방)로 들썩이던 1980년대를 넘어 15년여 만에 이런 소설 구절을 만난다.
“창밖으로 ‘케피르(kefir)’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트베르스카야 거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궁궐과 대저택들이 늘어선 거리의 노상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악사들이 연주하는 무소르크스키의 현악곡을 듣던 거며, 겨울이면 따뜻한 샤프카(털모자)와 사빠(장화)로 중무장하고 키오스크(가판대)에서 마로줴노예(아이스크림)를 사서 베어 먹으며 눈 내리는 황홀한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일들이 어제 일처럼 되살아났다. 트베리 광장에서 시작해 푸슈킨 광장까지 걸어가다 보면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체온이 내려갔고, 그러면 으레 근처 카페로 들어가 샤쉴릭 안주에 보드카를 마시며 오래도록 바깥을 내다보곤 했다. 노브이루스끼들의 고급 승용차가 기세좋게 내달릴 때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얼음조각이 깜짝 놀라 달그락댔고, 두툼한 유리병처럼 얼어붙은 거리에는 간간이 사람들이 오갔다.”(‘작가’ 2005 겨울호 ‘아홉 개의 푸른 쏘냐’·김재영)
이 정도면 읽기가 불편할 판인데, 대체로 전편의 깔끔한 문장과 얘기풀이로 이런 불편을 에끼면서 이국 취미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묘미가 있다. 지난 십수년 사이 이주 노동자도 많아졌고 귀화한 박노자 같은 이는 이땅 사람보다 우리글을 더 잘쓰기도 하지만, 이 글에는 러시아산 달팽이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젊은 교수, 이땅에 잘못 온 러시아 아가씨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남쪽에서는 빨치산·아지트·비트·페치카 …에다 유명 정치인 이름 정도나 입에 익었고, 표기법이 좀 다른데다 자주 통하다 보니 ‘까자쵸크·깜빠니야·칼파스·빌레트·빠포스·아그루빠·뜨락또르 …등 북녘에서는 러시아 외래어가 좀더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외래어는 쉽게 구별되어 우리말에 잘 녹아들지 않으나 요즘은 그 정착 속도가 빨라졌고, 심지어 말차례나 문장조차 범접한다. 러시아 외래어라고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로되, 영어가 넘치는 균형 잃은 판세에 그나마 이런 이런 쪽 외래어는 한결 신선한 맛을 주는 바 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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