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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6 17:27 수정 : 2006.02.17 16:50

정순진/대전대 교수

관습 맞선 치열한 삶
여성의 언어로 기록
세대 넘은 공감에 ‘자매애’

나는 이렇게 읽었다/이상경 <나혜석 전집>

언니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68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우연히 어머니가 켜놓은 라디오 연속극을 들었는데 이혼당한 뒤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학교로 찾아갔다. 순사에게 잡혀가는 장면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아프고, 속이 상해 어머니에게 누구냐고 물었었다. 그때 나혜석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많이 배워 불행해진 여자라는 설명과 함께.

나혜석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온 건 20년 뒤 페미니즘을 접하면서였다. 그 20년 사이에 난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남편이 입원하자 스승, 선배, 동료 할 것 없이 남자들은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 “여자가 그렇게 나다니니 그렇지요”라고 반응하고, 다섯 살짜리 딸아이는 자기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고 항의하는 가운데 공부와 살림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혜석은 1896년생, 내 할머니와 동갑이었다. 그런데 생각과 행동은 60년 뒤에 태어난 나보다도 더 앞서 있었다. 나혜석의 글 중 가장 먼저 읽은 건 소설 <경희>였고, 읽자마자 논문으로 썼을 만큼 매료당했다. 그리고 한 편, 한 편 옛날 잡지를 뒤져 복사해 읽으며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이미 오래 전에 붙들고 관습과 규범에 맞서 치열하게 살다간 언니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자가 사유의 주체, 경제의 주체, 성적 주체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전집은 언니의 글 한두 편을 어렵게 읽으면서 느끼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고, 언니에게 훨씬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해주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가 경험한 것은 기록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기록하지 않았지만 언니는 달랐다. 여자의 몸을 둘러싸고 일어난 여자의 체험을, 여자의 언어로 기록할 필요를 느끼고, 또 여자를 억압하는 사회적 통념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지적할 필요를 느끼고 자신의 체험을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개인적인 체험이 공론화되어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그 체험을 공유하게 되고, 공유해야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으며, 사적 영역이 변화되어야만 여성이 해방된다는 것을 깨닫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러나 여자가 여자의 말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우리는 모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듣고 자라났으며, 우정이란 남자들의 전유물이며, 형제애는 중요해도 자매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또한 언니는 풍문으로만 존재했을 뿐, 진면목이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니가 있었기에 여자들은 서로에게 이념적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자매애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 얼마나 힘이 센지 알게 되었다. 그 자매애가 있었기에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빨리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글을 쓰거나 강의하면서 언니의 삶과 예술을 이야기하자면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언니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순간 가졌던 강한 의문이 함께 떠오른다. “많이 배워 불행해진 여자? 세상이 잘못된 거 아닐까?”

세상에 우연은 없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만 있다는 게 진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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