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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서양의학의 수입은 인구를 늘리고 군대를 강하게 하는 절대적인 국가의 과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1885년 제중원의 설립 또한 이와 관련돼 있다. 알렌과 미국 선교회는 이런 의도에 맞춰 조선 정부에 도움을 주고 일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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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학·종두법 도입의 ‘신화화’엔
선교와 식민통치 정당화를 위한
미·일의 불순한 동기가 숨어 있다
불안했던 조선 지배층의 의료근대화
과학을 원했지만 과학을 몰랐다
의학속 사상/(18) 개항 이후 서양 근대의학의 수입 “알렌은 지금 자기 앞에 이 나라의 거물 인사, 보수당의 거두가 누워 있고, 그가 생사의 지척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알렌은 수술용 가방을 열었다. 이 수술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고, 기독교와 진보는 그 빛나는 성공의 결실로 이 나라에서 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겼다. 이 극적인 장면은 한국의 근대사에서 그 서사시로서나 시나리오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묵시록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과학과 기독교, 그리고 미국의 이상이 한국에 그 피와 골수 속에서 새 활력을 환기시키는 역사의 동력으로 환영받기 시작한 때의 모습이 이러하였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지금껏 실시되어 오던 어떠한 한방 치료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의술이었다.”(민경배, 1991) “이런 비과학적인 분위기 중에 홀로 빛을 떨친 것은 이조말 ‘조선의 제너’라 불리우는 송촌 지석영 선생이다. 그는 일찍이 종두법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논술된 책을 입수하여 감명 깊게 읽었으며, 1779년 겨울 부산에 가서 일본 해군 군의 토츠카씨에게 종두의 핵심을 배워 이를 각도에 전파하여 조선 민중을 천연두의 참해로부터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종두의 과학적 효과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민중은 도리어 이를 외국의 마술, 사법으로 간주하여 심하게 배척했다. 그러나 서서히 8도의 문화도 날로 그 면목이 쇄신하여 지난날에 사술로 매도되었던 종두법이 이제는 하늘이 내린 복음으로 이해되어 전 도가 모두 그 혜택을 받기에 이르게 된 것은 오로지 모두 지 선생의 피땀 어린 노력과 고군분투에 힘입은 것이라 생각한다.”(시게무라, 1934) 필자는 현대 한국에는 서양의학의 도입과 관련된 두 개의 신화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알렌 신화’다. 위의 첫번째 인용문은 바로 이 ‘알렌 신화’를 말하고 있다. 그 신화는 “알렌과 미국 기독교 선교사 조선의 서양의학을 가져다주고 그것이 이후 한국의학의 뿌리가 됐다”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미국과 기독교의 근대적 은총을 핵심으로 하는 ‘알렌 신화’는 후대 한국의 교회사 연구자들이 알렌의 일기와 자서전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석영 신화’다. 두번째 인용문은 바로 이 ‘지석영 신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신화는 “조선인 지석영이 일본의 도움을 받아 조선 최초로 우두법을 익혀 전국에 퍼뜨렸다”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지석영 신화’는 1920년대 말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통치자가 ‘조선 우두법 도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냈다. 이는 일본이 조선의 우두법 도입에 결정적인 조력을 한 사실을 부각시켜, 식민지 통치의 정당화를 선전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강한 군대 위한 의학수입
이 두 신화는 개항 이후 조선의 서양의학 수입에 대해 세 가지 편향된 시각을 갖게 한다. 서양의학을 좁은 의미의 병원과 우두법 정도로만 국한시킨다는 점이 그 하나고, 그것이 몇몇 특정 인물의 희생으로 이룩된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는 점이 다른 하나다. 무엇보다도 당시 조선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는 대신, 일본 군진의료나 미 선교의료의 제국주의적 동기를 감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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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 지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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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카이스트 연구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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