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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1 15:49 수정 : 2006.02.21 15:49

부여박물관 이병호 학예연구사 주장

백제 사비시기의 대표적 절터인 정림사지의 5층석탑(국보9호) 자리에 현재의 석탑 건립 전 5층 목탑이 존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부여박물관의 이병호 학예연구사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간행한 '미술자료' 72ㆍ73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지금까지 도용이라 해석해 온 인물소조상들이 일본과 중국의 사례에 비춰볼 때 목탑 내부에 안치됐던 것들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여 정림사지 출토 소조상의 제작기법과 봉안장소'라는 논문에서 "5층석탑 하부에서 확인된 판축토층으로 미뤄 창건시기 목탑의 위치는 현재 5층석탑 자리로 생각되며 기단 규모나 건물 배치 등을 감안할 때 원래 5층 규모의 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1979년의 정림사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는 도용(. 무덤에 같이 매장한 인물상)이라 불리는 소조상들이 다량 출토됐다. 그러나 이 연구사는 지금까지 이것들은 일반 무덤에서 출토되는 도용으로 불려왔으나 이는 정확한 해석이 아니며 "절터에서 나온 인물소조상"이라는 의갱 제시했다.

그는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정림사지 기와구덩이에서 출토된 소조상들을 북위 시대 뤄양의 영녕사나 일본 호류지 5층목탑의 탑내숍, 백제의 사비시기 목탑 관련 유적의 사례를 비교분석한 결과 "목탑 내부에 안치됐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연구사는 1979년 발굴보고서에 대해 "판축토층이 확인된 점을 무시하고 소조상도 도용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하고 "정림사지 출토 소조상들은 원래 목탑의 탑내숍이며 5층석탑 이전에 목탑이 존재퓨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정기 전 문화재연구소장도 현재의 정림사지 5층석탑 기단부 아래에서 확인된 판축토층의 존재를 이유로 석탑 이전에 목탑이 존재퓨 것이라는 주장을 낸 바 있다. 석탑의 기단은 석축이나 토석혼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김용래 기자 yongla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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