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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3 18:38 수정 : 2006.02.24 19:03

신화의 이미지
조지프 캠벨 지음. 홍윤희 옮김. 살림 펴냄. 3만원

‘20세기 최고 신화 해설가’ 조지프 캠벨과 함께
400여점 도판으로 떠나는 세계신화 여행
“셰익스피어의 펜·우주비행사의 달 착륙…
신화가 있었기에 가능”

1910년, 미국 뉴욕에 사는 6살짜리 백인 소년이 남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를 보러 갔다. 백인 기병대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토벌하는 그 쇼를 보면서, 소년은 멋진 폼을 잡는 기병대장보다 오히려 토벌당하는 원주민들에게 더욱 빠져들었다. 그 뒤로 소년은 평생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소년은 스무살 청년이던 1924년 유럽여행을 떠나는 배 안에서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를 통해 동양의 종교 힌두교와 불교에 대해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이후 청년은 서구와는 다른 문화권의 종교와 신화에 몰두했고, 비교신화학자가 됐다. 그리고 평생을 세계 각지의 신화가 담고 있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민과 상상력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가 일흔아홉살 되던 해인 1983년, 20세기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새로운 신화’로 꼽히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최종편인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을 완성한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는 특별히 이 노학자를 초대해 영화를 시연했다. 자신에게 <스타워즈>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영감을 준 책을 쓴 학자에게 보답하고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조지 루카스가 공상과학과 디지털 영상기술로 만든 현대판 신화를 쓸 수 있도록 상상력을 제공해준 책을 쓴 그 학자가 바로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가’로 불리는 조지프 캠벨(1904~1987)이다.

이집트 스핑크스에서 폴록 그림까지

목판에 채색한 1480년 그림 <천상의 여왕 마리아>. 기독교 교회 그림에서 감춘는 힘이나 투영하는 힘은 아담을 유혹하여 신에게 받은 영원한 생명을 박탈당하게 만드는 이브와 뱀의 모습으로 전형화되었다. 반면 드러내는 힘은 성모 마리아로 표현되었는데, ‘에바(Eva, 이브)라는 이름을 아베(Ave)로 바꿈으로써’ 그 의미가 전도되었다.
캠벨은 신화가 없는 나라에 사는 미국 사람들을 신화의 세계로 인도한 이다. 19세기 영국의 민속학자 프레이저가 세계 각국의 민간신앙과 신화를 모아 인류학의 고전 <황금가지>로 비교신화학의 터전을 마련했다면, 캠벨은 비교신화학으로 신화가 대중들과 만나는 다리를 놓았다. 알기 쉬운 문체를 무기로 캠벨은 난해해 보이는 신화가 결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님을 입증해 보이며 신화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래서 신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라면 그가 쓴 책을 피해가기 어려울 정도다. 대표작인 <신의 가면> 4부작을 비롯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와 함께 하는 삶>과 <네가 바로 그것이다> 등이 국내에도 나와 있다.


이 책 <신화의 이미지>는 캠벨이 일흔살에 쓴 말년기의 대표작으로, 1974년 나온 지 32년만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제목 그대로 다양한 신화와 그 내용을 담고 있는 온갖 이미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서 신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림을 볼 수 있고, 반대로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부터 현대 추상화가 잭슨 폴록의 물감 뿌리기 그림까지 400여점의 도판들을 들여다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또다른 방법이다. 이 풍성한 도판들 덕분에 650쪽에 이르는 분량과 크기에 압도 당하지 않고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지만, 도판들이 모두 흑백인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옛이야기를 가득 담은 이야기 보따리 같은 책이어서,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처럼 틈날 때마다 순서에 상관없이 어느 한 부분 펼쳐 읽는다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캠벨은 현대사회가 ‘과학’과 ‘이성’을 얻은 대신 ‘신화’를 잃어버린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았다. 현대인이 신화를 지니지 못한 탓에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기 쉽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캠벨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선가 훗날 신화가 될 이야기가 싹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역설했다. 캠벨은 “신화는 개념체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체계에서 온다”고 강조했다. “신화는 사실을 가리키지 않고 사실들 너머 그 사실을 알려주는 무언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 책 역시 이런 관점에서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신화들이 지닌 힘, 그리고 신화가 가리키는 사실 이상의 무언가를 전하고자 한다.

티베트의 <타라> 조각상. 타라는 신성한 자비의 눈물의 화신으로, 우리를 미혹시키는 즐거움이나 공포의 주술로부터 마음과 정신을 해방시키러 오는 불교의 구세주다.
캠벨이 신화와 독자들이 대화하도록 이끌기 위해 고른 방법은 융 심리학이다. 그래서 캠벨은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한 부시맨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우리를 꿈꾸는 꿈이 있답니다.” 꿈을 통해 신화의 문을 여는 것이다. “꿈은 깨어있는 의식에 알려지지 않은 채 내면세계로부터 떠오르는 것이며, 이는 신화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 뒤 “사실,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덧붙인다.

현대인, 과학과 신화 바꿔

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한 신화 이야기는 캠벨이 추려 뽑은 동서양 각국의 신화들을 비교하는 긴 여정으로 이어진다. 북유럽 신화의 세계나무 이그드라실과 인도의 신 비슈누, 이집트의 호루스 등 널리 알려진 신화속 주인공들부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태평양 섬들의 신화와 의례까지, 각국의 신화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펼쳐보이면서 캠벨은 이 온갖 이야기들이 인류의 원초적인 꿈과 같은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꿈 속에 지역과 시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으며, 동시에 서로 다른 독특한 사유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캠벨은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신화의 의미와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힘주어 말하는 법 없이 신화를 소개하면서 살짝 간을 맞추듯 자기 생각을 조금 내비칠 뿐이다. 책의 마무리도 독자 개개인들이 신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끝맺는다. 역시 그 답이 ‘신화’임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우늘날 우리가 꾸고 있고, 그것이 우리를 꿈꾸는, 그 꿈은 무엇인가? 어떤 르네상스적 깨어남이 티치아노의 붓과 셰익스피어의 거침없는 펜에 영감을 불어넣고, 갈릴레오와 뉴턴과 달나라를 향한 우주비행사들의 비행을 가능케 했는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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