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23 18:51
수정 : 2006.02.24 19:04
말글찻집
‘신어’보다 ‘새말’이 낫겠으나, 최근 국립국어원(원장 이상규)에서 <2005 신어>(담당 김한샘)란 자료집을 냈다. 전국 42곳의 신문·방송·인터넷 매체에서 새로 나온 말 408개를 그 쓰인 문장과 함께 추려 보이고, 이를 1995년부터 조사한 새말들과 견줘 계속 쓰이거나 없어진 말, 주제별 목록 등을 가지런히 보여주고 있다. 새 천년 안팎 10년을 살아온 이땅 사람들의 마음 자취와 세태를 더듬어보게 하는 자료다.
우선, ‘새말’들의 얼굴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과 말 만들기 수준이 영 아니어서 실망스럽다. 새말이란 대체로 세태를 반영·풍자하거나 꼬집는 말이어서 어설플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이토록 거름도 되지 못할 플라스틱 같은 말이나 만들어 쓰는구나, 새삼 절망하게 된다. 한편으로, 7천만 어절에서 추리고 견준 수고 끝에 이런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반성하고 부끄럽게 하는 것으로도 큰 뜻이 있겠다. 괜찮은 말도 따로 떼내 발가벗겨 놓고 보면 볼품이 없는 법이어서, 좋은 것만 바란다는 게 욕심일 수도 있겠다.
뜯어보면 몇가지 심각한 현상이 드러난다.
기존의 말이나 앞뒷가지가 있는데도 이를 쓰지 않고 영어식 조어로 대체되는 추세가 뚜렷하다. 육아데이·추어데이·오이데이 …의 ‘데이’가 ‘날’을, 가·자·인·원(家·者·人·員)들이 쓰일 자리에 ‘이스트’ 따위가 대신하며, 플로리스트·쇼핑호스트·애널리스트 …처럼 직업이름의 서양화가 두드러진다. ‘육아데이’처럼 정부 부처에서 만들어 퍼뜨린 말도 적잖다.
체테크·카테크·세테크·휴테크 따위 ‘술(기술)·방법’을 ‘테크’로 쓴 지는 꽤 됐는데, 새끼를 치는 데 염치를 돌보지 않는다. 쌀파라치·주파라치 따위는 ‘-꾼’이면 될터인데도 ‘파라치’를 달고 나타난다. 이는 특히 언론이 부추긴 ‘우스개’ 수준이어서 부끄럽다.
‘짱·빠·깡·꽝·폰 …’은 정체를 가릴 게 없는 지경이 된 성싶다. 꼴이 우습긴 하나 꽤 생산적인 맛조차 준다.
한가지 반가운 점은 누리집·누리꾼·내려받기·그물친구·아자·다걸기·땅배·새들이·어울모임·젓가락날 … 따위 애써 다듬거나 토박이말로 된 새말들이다. 여기엔 인위적으로 다듬은 말도 적잖은데, 그런 점에서 개인이든 기관이든 새로운 사물 이름을 제대로 짓는 일과 외국어를 뒤치고 다듬는 데 좀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야 저런 벌떼 같은 양식 조어들을 많이 쓸고 정리할 수 있을 터이므로.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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