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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마고 펴냄. 1만4800원 |
시각인식불능증 좌측편마비 등
기이한 신경장애에 대한 문학적 임상보고서
“잠에서 깨어나 몸을 뒤척거렸더니 누군가의 발이 있는 거예요. 잘린 발이에요. 무서웠어요. 만져봤더니 좀 이상하고 차가웠어요. 아하. 누군가 장난을 친거야! 짓궂은 간호사가 해부실에서 발 하나를 갖다가 침대 속에 넣은 게 틀림없어. 장난 치고는 지나치다는 생각에 침대 밖으로 내던졌어요. 그런데 내 몸까지 딸려 내동댕이쳐진 거예요. 게다가 이젠 그게 내 몸에 붙어 있어요.” (침대에서 떨어진) 그는 양손으로 다리를 움켜쥐고 몸에서 떼어내려고 애쓰다가 안 되자 미친듯이 때려댔다.
연극의 한토막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색전으로 인한 좌측편마비환자’의 증상과 행태에 관한 임상보고의 일부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이마고 펴냄)는 이처럼 다양한 신경장애를 앓는 환자 이야기를 모았다.
나는 OO을(를) 들어올리며 뭐냐고 물었다. “조사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OO을(를) 손에 들고 자세하게 조사해나갔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군요. 주름이 잡혀있군요. 음 또 주머니가 다섯 개 달려 있는 것 같군요. 음, 말하자면….” 그가 주저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설명을 하셨으니 이제 그게 뭔지 말해보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잔돈주머니일 수도 있겠군요. 크기가 다른 다섯 가지 동전을 집어넣는…”
당신은 OO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대목 역시 시각인식불능증 환자의 증상이다. 신경학 전문의의 전문성과 문학성이 만나 시니컬한 단편소설처럼 읽힌다.
그는 자기 식판에 왜 후식이며 커피가 없냐고 간호사들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바로 거기 있잖아요. 왼쪽에 말예요”라고 말해 주어도 그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지 않았다. 후식이 그의 오른쪽 시야에 들어오도록 간호사들이 머리를 조심스럽게 왼쪽으로 돌려줘야 비로소 “그래요. 여기 있군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라고 말했다. 자기 몫이 적다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사실은 접시에 있는 음식의 오른쪽 절반밖에는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중풍)
이쯤이면 우스꽝스러움은 잦아들고 처절해진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은 반신불수 아닌가. ‘임상보고서’가 공감을 얻고 사랑받는 이유다.
지은이의 임상보고는 자체가 문학적이거니와 도스토옙스키나 흄, 보르헤스, 웰즈의 문학작품에서 신경질환 사례를 찾아낸다. 900년전 신비주의자 수녀 힐데가르트의 그림에서 편두통으로 인한 증상까지 끄집어낸다.
탁자에 있던 성냥갑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 안에 성냥이 쏟아졌을 때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111”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나서 존이 “37”이라고 중엉거리고 마이클도 마찬가지였다. 성냥개비들을 세어보니 정말 111개였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셀 수 있지?” 하고 묻자 그들은 “세는 게 아녜요. 111이 보였어요”라고 대답했다. “왜 37이라고 중얼거렸지?” “37, 37, 37 하면 111.” 그들은 숫자들로 이뤄진 이상한 풍경을 불러들여 그 안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우주에 내재하는 음악을 본 피타고라스의 감수성과 통한다. (자폐증)
“그들의 재능이 꾸깃꾸깃 구겨져 휴지통에 버려졌을지도 모른다”는 자폐아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은 보편적인 인간애로 확장된다. “섬과 같은 존재인 인간, 기존문화에 동화될 수 없는 인간, 본토의 일부가 될 수 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 발 붙일 곳이 있을까.” (OO의 답은 장갑이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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