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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3 19:21 수정 : 2006.02.24 19:07

동물들은 왜?
디다스 데커스 지음. 이옥용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1만2000원

책속의 한장면

복장과 소도구는 신분의 상징이다. 자동차는 돈이 많이 들고, 재킷 핀은 유행을 타고, 넥타이·벨트·굽높은 구두는 고통스럽다. 그 탓에 꾀바른 사람들은 개를 데리고 다닌다. 값이 쌀 뿐더러 유행이나 고통을 개한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개줄 양끝의 두 생물이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푸들 주인은 ‘네발 달린 가발’로 무엇을 보여주려는 걸까. 푸들은 동물학적으로 개, 사회학적으로는 사탕상자다. 푸들은 자연을 굴종시키기 위한 정복의 상징이다. 사람들은 푸들의 외모만 손질하는 게 아니라 개 자체를 세공한다. 가위며, 털말이 집게며, 개털 빗으로 아주 오래도록 주물러 개가 더 이상 개같이 보이지 않게 된다. 어머니 자연을 찬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을 철저히 개조하고 변형시키는 것이다. 푸들을 보면 신이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 인간이 자기 의견을 조금이라도 내놓을 수 있었다면 동물계의 모습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알 것 같다. 인간이 자연의 나머지 부분으로 어떤 일을 꾸몄을지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만일 그랬다면 난 절대로 생물학자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132~134쪽 ‘푸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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