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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3 21:30 수정 : 2006.02.24 19:09

1959년에 지진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메디슨 강의 수로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지진호수가 생겨났다. 물에서 삐져 나온 나무들은 당시 수로변에 있던 나무들.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40)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수술을 하려 한다. 차량 통행이 빈번한 옐로스톤 공원 도로와 도로난간 사이 빈터에 큰 비닐 봉지를 깔았다. 다리 절단 수술을 준비하는 집도의와 같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수술도구들을 가지런히 놓았다. 체인커터, 렌치, 알렌 키… 자전거의 중추신경이라고 할 수 있는 체인은 수십 개의 마디로 이뤄져 있고 그 마디들은 말초신경 격인 조그만 리벳으로 연결돼 있다.

여름 번갯불이 가을비 올 때까지 탄
예로스톤은 나무들의 집단학살현장
지반 아래엔 초대형 마그마
238도로 끓는 간헐천엔 하늘 가린 수증기
산맥 열받아 솟구치면 미국이 잿더미?

리벳 하나를 체인커터로 뽑아냈다. 체인이 툭 끊겨버린다. 이어 신경계에 해당하는 뒤 드레일러 전체를 들어냈다. 그리고 앞 드레일러도. 그런 뒤 앞 기어에는 고, 중, 저 3단 중에서 중단, 7단이 있는 뒤 기어에는 5단의 톱니바퀴에 체인을 앞뒤로 걸어 길이를 잰 뒤 체인을 맞춰 잘랐다. 이제는 봉합수술로 들어갈 차례. 리벳을 집어넣어 체인을 다시 연결했다.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리벳은 잘 빠지지 않고 잘 들어가지 않는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기어 21단짜리 자전거가 그냥 1단짜리 자전거가 됐다. 19세기 자전거 수준으로 후퇴했다. 시험 주행하려고 페달을 몇 번 밟으니까 체인이 맥없이 끊어져버린다. 리벳이 제 자리에 정확히 들어가지 않은 탓이다. 다시 체인을 끊어서 떼어내고 붙이고 땡볕 속에서 세 시간을 씨름한 끝에 자전거는 전신마비의 상태에서 깨어났다. 응급수술에 성공한 것이다. 페달을 밟으니 간다. 물론 빨리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움직인다는 게 중요하다. 응급실에서 나와 내딛는 첫 걸음의 느낌이 이럴까.

산불이 숨은 씨앗 퍼뜨리기도

고통스럽게 느린 그 자전거로 30여㎞를 달려 그랜트 빌리지에 도착했다. 함께 먹기로 했던 점심 무렵이 훨씬 지난 오후 4시, 카를로스와 고르고 형제는 물론 보이지 않는다. 캠프장 숙박명부에서 확인해 그들의 텐트 사이트로 갔다. 나중에 그들이 돌아왔다. 마치 이산가족과 상봉하듯 감격적으로 해후했다. 우리는 우리 앞에 텐트를 친 아이반하고 인사를 나눴다. 스위스 베른에서 온 그는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출발해 남아메리카의 끝 아르헨티나까지 갈 예정이다. 독일어가 모국어이고 영어도, 이탈리아어도, 스페인어도 잘 했다. 엔지니어링 회사의 중역으로 일하다가 이번 여행을 위해 퇴사했다. 3년 간 주유천하할 예정. “중역으로 더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쓰지도 못할 돈을 벌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여행할 만한 충분한 돈이 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더 높은 자리를 원하게 되고 돈을 벌게 되면 더 벌고 싶은 욕심에 끝이 없다. 이제는 그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 미혼인 그는 나랑 동갑인데 훨씬 성숙하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보였다.

카를로스와 고르고 형제와 함께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끝에 고르고의 직업이 가로청소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 시 정부에서 일한다고 해서 고위공무원을 연상했었다. 중앙정부에서 일한다고 하는 카를로스는 건설부 소속 도로 포장 인부였다. 그래도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 자전거로 여행하기 때문이다.

내가 와인 한 병을 사와서 네 사람, 회사 중역 출신의 스위스인과 가로청소원, 도로포장인부인 스페인인 두 사람, 그리고 백수인 한국인이 조촐한 저녁 잔치를 벌였다. 이게 자전거혁명이 꿈꾸는 사회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자전거를 타든,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순간 우리의 신분은 같다. 라이더다. 우리 주위에 야영을 한 사람들이 구운 감자 네 알과 브라우니를 가져와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텐트에 얼음이 얼어 있었다. 옷이 없어서 벌벌 떨었다. 나뭇가지를 주워와 모닥불을 피워 함께 몸을 녹이고 아침식사를 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아이반은 남쪽으로, 카를로스 고르고 형제는 옐로스톤을 더 보기 위해 동쪽으로, 나는 북서쪽으로 향했다. 잠시 허하긴 했지만 이제는 그 느낌이 오래 안 간다. 나도 제법 독립적이다.

내 자전거에서는 씩씩 소리가 난다. 체인의 길이가 정확히 앞 뒤 톱니바퀴에 안 맞은 탓이다. 응급수술을 받은 환자에게는 무리한 노동이다. 지금 가는 길은 지난해 가족들과 함께 여행했던 길이어서 생각이 많이 났다. 길은 메디슨 강을 따라 서쪽으로 휜다. 미국에서 국립공원으로는 처음 지정된 옐로스톤은 노래 비목을 떠올린다. 초연 대신 산불이 쓸고 간 깊은 계곡이기 때문이다. 88년 여름 번개로 발화된 불이 가을 비가 올 때까지 탔다. 소방관 수천 명이 달라붙었지만 수많은 나무들이 타거나 쓰러지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위스에서 온 엔지니어링 회사 중역출신 아이반(왼쪽부터)과 스페인에서 온 두 형제 카를로스와 고르고. 공무원이라고 신분을 밝혀 팔자 좋은 고위공무원이어서 세계여행을 하는 줄 알았는데 카를로스는 건설부 소속 도로포장인부, 고르는 가로청소원이었다.
그래서 옐로스톤은 지금도 나무들의 집단학살현장으로 보인다. 사실 그게 자연이다. 산불은 나무를 태워 쓰러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땅에 흩어져 있는, 솔방울 모양의 씨 주머니를 터뜨려 씨를 퍼뜨린다. 로지폴(Lodgepole)이라는 침엽수가 그렇다. 이 나무의 씨는 솔방울 속에 보통은 50, 60년, 길게는 150년 동안 갇혀 있다가 산불이 씨주머니의 외피를 터뜨려주면 세상 밖으로 나와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나무로 성장하기 전까지 몇 십 년을 기다리고 있는 참을성이 오묘하다. 캘리포니아 삼나무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나온 씨에서 시작, 높이 11까지 치솟는 나무가 된다. 산불로 탄 나무 재들이 이 씨와 어린 묘목들의 비료가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근위병들의 교대의식 같은 게 없을 뿐이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무들은 장엄하고 정중하게 삶을 교대한다. 내가 사는 동안은 나무가 무성한 옐로스톤을 보지 못할 거라는 게 슬프지 않다.

돈 벌겠단 욕심의 고리 끊으면

옐로스톤은 수온조절이 잘 안 되고 파이프가 곳곳에서 새는 목욕탕과 같다. 곳곳 간헐천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하늘을 가린다. 수온은 최고 섭씨 238도까지 올라가니 그런 열탕이 없다. 이유는 지표 5㎞ 밑에 사시사철 들끓는 불가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지질학에서 마그마라고 부르는데 단층과 단구를 통해 지표수가 흘러 들어오면 따끈따끈하게 데워서 위로 쏘아준다. 이 옐로스톤 ‘불가마’는 64만 년 전 보일러공이 잠시 한눈을 팔았는지 폭발사고를 쳐서 목욕탕을 날려보냈다. 그 재가 멀리 루이지애나와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55 곱하기 80㎞의 크기의 이 ‘초대형 불가마’가 다시 사고를 치는 날이면 미국 대부분이 두터운 잿더미에 덮일 거라고 한다. 그 날은 앞으로 수천년 안에는 안 올 거라고 하는데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옐로스톤에서 화상을 안 입고 빠져나와 여덟 번째 주인 몬태나에 들어갔다. 몬태나는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마음이 설??? 공원밖에 있는 마을인 웨스트 옐로스톤에는 자전거포가 두 곳 있었다. 처음 들른 곳에서는 여성이 자전거 기술자였다. 이름이 멀리샤인 이 기술자는 드레일러를 뒤 바퀴 축에 거는 걸쇠(hanger)가 휘어서 드레일러가 빠져버린 것이라고 옳게 진단하면서 하지만 내 자전거에 맞는 걸쇠가 없으니 다른 자전거포에 가보라고 길을 일러줬다. 다른 자전거포에서는 미국 횡단 여행 중 처음으로 내 자전거가 몰튼(Moulton)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자전거포 주인과 기술자가 있었다. 몰튼은 자동차 완충 장치에 관한 여러 개의 특허를 갖고 있는 항공엔지니어 출신 알렉스 몰튼 박사가 설계한 영국 자전거. 영국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자전거는 보통 26인치 안팎인 다른 여행용 자전거보다 작은 20인치 바퀴로 간다. 몰튼 박사는 바퀴가 작을수록 더 쉽게 가속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몰튼 자전거를 개발했다. 이 자전거포의 기술자 레스는 36년 동안 자전거만 수리해온 베테랑으로 없는 부품이 없었고 못 고치는 고장이 없었다. 내 자전거는 화타와 같은 레스의 손으로 다시 건강을 찾았다.

웨스트 옐로스톤에서 287번을 타고 메디슨 강을 따라 가는 길에 데이브와 잭이라는 두 라이더를 만났다. 61세인 데이브는 의사로 일하다 은퇴하고 자전거포에서 파트 타임 자전거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리건 주 아스토리아에서 출발한 그들의 주행기록은 2260㎞. 나는 아스토리아보다는 가까운 오리건 주 플로렌스에서 여행을 끝낼 예정이다. 그렇다면 6800㎞의 여정이 2000㎞ 이내로 줄어들었고 하루에 100 킬로미터씩 가면 20일이면 여행을 끝낼 수 있다는 얘기다.

왜 자꾸 끝을 보려고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콜로라도 주 푸에블로로 갈 때도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로 돌아가지 말고 웨스턴 익스프레스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직행하고 싶은 유혹에 흔들렸다. 그러면 최소한 20일은 절약했을 것이다. 옐로스톤에서도 몬태나로 돌지 말고 바로 아이다호 주를 건너 오리건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일주일은 여정을 앞당길 수 있다. 신기하게도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로 계속 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서두르면 안 그래도 짧은 인생이 더욱 더 짧아진다는 걸 아직도 체득하지 못한 것 같다.

갈림길마다 질러가고 싶은 유혹

옐로스톤 공원 일대에는 일년에 1천 번에서 3천 번의 지진이 일어난다. 경미한 지진들이지만 어떤 것은 규모 3, 4도짜리도 있다. 59년에 일어난 지진은 내가 달리는 287번 국도를 막아버렸다. 산사태가 일어나 도로뿐 아니라 매디슨 강의 수로를 차단하는 바람에 호수가 생겨났다. 이제 나이가 46살밖에 안 되는 지진 호수(Earthquake Lake)에는 아직도 당시 강변에 있던 나무들이 물에 잠긴 채 그 때의 수로를 표시하고 있다. 그 때 야영을 하던 28명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시체를 찾지 못해 아직도 120m의 흙더미 아래 묻혀 있다고 한다. 여기서 100㎞ 가량 떨어진 옐로스톤의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에서는 보통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간격으로 뿜어 나오던 수증기가 그 때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올라왔다고 한다.

길 중간에서 손수 응급수술 마디마디 분리-절개-봉합
전신마비 깨어난 두바퀴 고통스럽게 간다
30여km 떨어진 캠프장서 스페인 형제와 감격의 상봉

그렇게 지구는 살아있다. 꿈쩍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산맥은, 비디오를 빨리 감아보면, 매우 역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하루살이가 인생을 알 수 없듯 사람은 자연의 움직임을 인식할 수 없다.
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옐로스톤 강 근처의 르 하디 래피즈(Le Hardy Rapids) 지역은 1923년 이후 지금까지 72㎝가 솟아올랐다. 옐로스톤 ‘불가마’ 바닥은 1984년까지는 계속 솟다가 85년부터는 10년 동안 가라앉았다고 한다. 밟힌 지렁이처럼 옐로스톤은 꿈틀대고 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지진 호수로 가는 길 중간에 점심 먹으러 들른 헤브겐 호수 변의 술집에는 남자들은 엉덩이, 여자들은 가슴을 노출시킨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잔뜩 전시돼 있고 화장실에는 창문밖에 벌거벗은 여자가 두 가슴을 내밀며 소변기를 쳐다보고 있어 깜짝 놀랐다. 다시 보니 인조인형이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질탕하게 놀고 보자는 건가. 이 술집에도 "돌보지 않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책임 안 짊"이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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