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02 17:32
수정 : 2006.03.03 16:03
동아시아는 지금
“그런데 ‘민족’을 중시한다 하더라도 자유나 민주주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맹국’과의 관계를 그 때문에 흔들어도 좋은가. 박근혜씨의 비판은 실은 일본인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식민 지배한 일본에게는 역사문제로 심하게 대하면서 조선전쟁(6.25)의 상대였던 북한한테는 너무 후하게 대하는 것 아닌가.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한류 드라마에 들끓는 일본도 진한 피는 당해내지 못하는 것인가.”
그가 인용한 ‘박근혜씨의 비판’의 일부는 이렇다. “노무현 정권 3년은 국민의 분열과 갈등을 부추겼다. 대북한 융화정책도 미국이나 일본과의 동맹관계보다 민족간 협력을 중시한 탓에 실패했다. …자유민주, 시장경제, 법치주의도 확립되지 않은 북한의 현실을 무시하고 남북교류에만 열을 올리는 건 이상하다.”
그는 한국에 흔히 ‘진보적’ 또는 ‘중도좌파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일본 유력 일간지 <아사히신문>의 논설주간 와카미야 요시부미다. 얼마전 일본기자클럽 한국방문단 단장 자격으로 방한해 차기 대통령선거전 유력후보자들을 두루 만나고 가서 지난 27일치 자신의 고정칼럼난 ‘풍고계’에 방한기를 올렸다. 그는 양심적이고 균형감각도 지닌 존경받는 언론인이며 한국에 대해서도 일본내 누구보다 이해가 깊은 사람축에 든다.
그는 또다른 유력 후보들인 정동영, 김근태씨의 전혀 다른 견해도 썼고 이명박, 고건씨 얘기도 실어 균형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실은 일본인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고 했듯이 얘기의 무게는 맨 위 인용문에 실려 있다.
<아사히>의 간판격인 그가 노 정권에 대해 불편해 하거나 못마땅해 하고 있다는 느낌은 글 전체를 통해 감지된다. 칼럼 마지막에 청와대 방문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했다는 얘기를 덧붙인 것도 그렇다. 와카미야의 유감은 노 정권 차원에 머물진 않는다. 그가 얼마전 권오기 전 통일부장관과 대담형식으로 묶어 출간한 <한국 일본국>이라는 책에서도 ‘민족’과 ‘동맹국’을 대립적 관계로 놓고 민족가치를 중시하기 시작한 최근 한국사회의 변화를 탐탁찮아 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아사히>의 이런 자세는 ‘정부 차원에서는 더 이상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했던 김대중 정권에 대한 넘쳐났던 호의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따라서 ‘민족’과 ‘동맹국’이라는 대립항 설정과 비판도 실은 일본 과거사 비판에 대한 우려와 불쾌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들한테서 안정과 번영 두가지를 한꺼번에 제공했던 ‘좋았던 냉전시절’을 그리는 진한 향수가 풍겨온다고 하면 좀 심한 얘긴가.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은 나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기득권을 보장하는 한·미·일의 철통공조를 흔들고 중국이라는 새 경쟁국에 기회를 제공하면서까지 추진해야 할 가치는 없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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