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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2 18:28 수정 : 2006.03.03 16:05

논형 ‘장소와 장소상실’

아깝다 이책

<장소와 장소상실>(에드워드 렐프 지음)의 원저는 30년 전에 출간됐다. 그럼에도 이 책을 번역 출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이 그려내는 사회적, 공간적, 장소적 현상이 한국의 ‘현재 상황’이어서 현실을 성찰적으로 보는 중요한 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1957년 출판된 바르트의 <신화론>이 1995년에서야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된 사실 역시 큰 위안이다. <신화론>은 저자 렐프가 이 책의 경관 해석에 중요하게 참고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자연)환경 관계라는 지리학 주제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기껏해야 참고도서 정도로 읽혔을 뿐이다. 그러나 당시 인문지리학의 연구주제나 틀(지역지리학, 또는 계량적인 공간분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매우 독창적인 책이다.

이 책에서 제기하는 장소 개념, ‘장소의 정체성’과 관련된 ‘진정성’ 문제, 건축을 중심으로 한 경관연구, 장소의 이미지, 미디어, 교통수단, 대중문화의 소비나 관광 등은 오늘날에도 매우 논쟁적인 주제이며, 특히 포스트모던 경관론에서 더욱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주제들의 바닥을 관통하는 핵심개념이자 문제의식이 바로 ‘장소의 진정성’이다. 전통적이든, 진보적 입장이든 현대의 경관을 비평하고 해석하는 기준은 여전히 장소의 진정성이다. 장소가 진정성을 상실했거나,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를 ‘장소상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 거의 보편화되었는데, 이 용어가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디즈니화’ ‘박물관화’ 같은 신조어 역시 ‘장소상실성’의 가장 대표적인 현상으로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렐프의 현대 경관 분석이 가지는 의의는, 첫째 그가 당시(1976년) 전근대 경관과 대비되는 현대 경관의 특징적 사례로 든 디즈니랜드, 온타리오 플레이스 같은 대규모 오락공원,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없는 건축물 등은 오늘 날 포스트모던 경관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적 특징으로 꼽히는 문화적(미학적) 대중주의, 문화적 생산물의 깊이없음, 의미의 해체, 역사성의 빈곤, 중심의 분산, 진정한 정서의 고갈, 혼성모방, 이미지와 기호 그리고 신화의 경관 역시 렐프가 모던 경관의 특징으로 제시하는 것들이다. 이는 모던 경관과 포스트모던 경관의 질적인 차이를 주장하는 입장에 반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비드 하비 등 일단의 비판이론가들의 견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소비주의가 더욱 심화된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논리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두번째 의의는 그가 오늘날의 장소 경험과 현대 경관의 분석에 토대를 닦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그에 의해 본격적으로 소개된 ‘장소상실’ ‘장소의 정체성’ ‘장소의 진정성’ ‘장소의 이미지’ ‘디즈니화’ ‘박물관화’ ‘장소신화’ 같은 개념들은 현재에도 장소 및 경관 분석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또한 장소의 정체성이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다는 언급 등은 현재 문화지리학의 중요한 화두인 ‘공간의 사회적 구성론’이나 ‘미디어 지리학’, ‘장소신화론’으로도 연결된다.

우리는 렐프가 이 책을 썼던 당시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해진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이러한 장소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더 풍부하고 정교한 개념과 도구들도 많다. 이 책이 한국의 인문사회 및 건축, 도시, 조경학 분야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우리가 장소 연구를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렐프는 싱클레어 골디의 말을 인용해 당부하고 있다.


“즐기기보다는 참아야만 하고 무시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사는 것은 인간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다.”

소재두/논형출판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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