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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2 20:25 수정 : 2006.03.03 16:07

황진미/영화평론가

80년전 도발적 잡지 여전히 이토록 생생할까
신여성의 운명은 오늘도 계속된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연구공간 수유+너머 근대매체연구팀 지음<신여성- 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

이 책은 1920년대 여성잡지 <신여성>속에 재현된 ‘신여성’이라는 흥미진진한 존재와, 이를 둘러싼 당대의 시선을 7개의 꼭지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인용과 삽화를 곁들인 일종의 ‘사료’라고도 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젠더연구를 바탕으로 서술한 문화비평서이기도 하다.

어렵지 않다. 어쩌면 가벼운 심심풀이로 2호선 전철 한 바퀴를 돌기 전에 훌렁훌렁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두께에 비해 편집은 헐겁고, 종이는 가볍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얻게 되는 건 ‘잡상식 늘리기’에 비해 훨씬 큰데, 그 이유는 첫째, <신여성>이라는 매체가 지니는 신선한 충격 때문이요, 둘째, 당시의 담론들이 때깔만 달리한 채 지금도 여전히 반복된다는 아찔한 깨달음 때문이다.

<신여성>은 ‘신여성’이라 불릴만한 여성이 전체 여성의 0.03% 에 불과하던 시절에 이들을 독자이자 기사거리로 삼아, 1923년 창간부터 26년까지, 31년 복간부터 34년까지 발행되었으니, 그 자체가 신통방통한 노릇이다. 잡지의 성격을 드러내는 기사들을 보면 현재의 <주부생활> 같은 고답적인 기사에서부터, 급진적인 <이프>의 주장에까지 걸쳐있고, ‘현대생활백서’같은 깜찍한 문구들과 우스개와 카툰까지 포괄하고 있으니, 80년 전의 ‘참신한’ 잡지 <신여성>을 들여다보는 가십적 재미는 상당하다.

그러나 정말 놀라운 것은 당시 ‘신여성’을 둘러싼 비판적 논의들의 현재성이다. 그들이 물질적 사치는 물론 문화교양의 사치를 부린다는 지적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여대생들의 명품을 좇는 욕망이나 문화예술을 향한 스노비즘은 꽤 오랫동안 비아냥의 표적이었다. 또한 ‘스스로 경제력을 가질 생각을 하지 않고, 남편에게 의존하려는 것은 창기(娼妓)나 마찬가지’라는 논법은 80년대 모 남자 대학생의 격문에서도 보았던 글귀이고, 최근의 인터넷 토크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야기다. 또한 그녀들이 직업을 갖기를 그토록 요구하면서도 ‘아이가 잘못된 것은 어머니의 부주의 탓’이라는 시선 역시 유구한 것이다. ‘내 아기는 다르다’, ‘똑똑한 엄마 되세요’ 같은 카피가 전달하는 ‘(신)여성의 어머니 되기의 사명’ 역시 마찬가지다. 섹슈얼리티에서도, 최근 ‘여대생의 50%가 성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에 대해, ‘여대생을 창녀로 만들며 모욕한다’는 욕설을 퍼붓는 실정 역시, 기생과 여학생이 혼동되는 것을 심히 우려하며 여학생을 ‘순수의 존재’로 남겨 놓으려던 80년 전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여학생들간의 동성애를 이성애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게 하는 방지물이자, 이성애에 의해 재편되기 전 과도기적 감정 쯤으로 치부하는 시각은 21세기 영화 <주홍글씨>에서도 변함이 없다.

80년 전의 이야기 중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과연 어떤 분야가 이토록 생생한 현재성을 지닐까? 순진한 여학생으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순결을 유지하며, 로멘스를 꿈꾸다, 연애를 결혼으로 완성하여, 똑똑한 어머니가 되고, 남편에게도 의존치 않는 ‘슈퍼우먼의 탄생’이라는 ‘미션 임파서블’의 전과정을 수행해야 하는 (신)여성의 운명은 오늘도 계속된다. 영화 <구세주>엔 숫처녀로 남자를 만나 그의 아이를 혼자 낳고 길러가며 검사(劍士)가 되고도 아내이자 며느리로 인정받고자 무진 애를 쓰는 여주인공이 나온다. 그녀는 흡사 히드라다. 그녀가 히드라인 것은 지식인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사회의 문어발식 욕망 때문이다. 여대생이 창녀가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전문직 여성에 대한 난도질이 횡횡하는 가운데, 옛날 잡지를 보며 격세지감은커녕 “세월은 X구멍으로 먹었냐?”는 욕설이 절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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