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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윌리엄 새들러 지음. 김경숙 옮김 사이 펴냄. 1만2000원 |
마흔부터 30년간 ‘제3연령기’
중년의 위기는 ‘2차 성장’ 기회
과거의 성취에서 자신을 풀어주고
나이들수록 삶을 다채롭게
내 안에 숨은 ‘아이’에게 손내밀라
자, 도전만 남았다
위기감에 빠진 단테. 인생의 절반을 살았다는 생각에 혼란스럽다. 그 앞에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난다. 그리고 영적인 여행을 함께 떠나자고 권한다.
단테(1265~1321)가 쓴 서양 고전 서사시 <신곡>은 그렇게 시작한다. 작품 속 단테를 위기감에 몰아넣은 것은 ‘중년’에 접어들었다는 위기감이 아니었을까. 더는 삶에 새로움은 없을 것 같다는 권태감, 중년부터 인생이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 같다는 무기력감 같은. 그렇게 방황하던 단테는 때마침 찾아온 베르길리우스의 제안을 따라 1300년 수난의 금요일에 지옥과 천국을 돌아보는 긴 여행길에 나선다.
서른 다섯에 영적 여행 떠난 단테
그러면 <신곡>에서 주인공 단테가 여행을 떠날 때 그는 몇 살이었을까? 서른다섯 살이었다! 스스로를 중년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떨까. 마흔 살이면 인생은 이미 노년기를 향해 저물어간다고 여기지는 않는가.
미국의 사회학 교수인 윌리엄 새들러는 30여년 전 아프리카에서 교환교수로 있을 때 아프리카 남자들의 나이를 자신이 스무살쯤 어리게 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껏해야 대학생쯤으로 여긴 사람이 마흔 살이나 된다는 사실에 놀란 그는 아프리카 남성들이 중년 나이에도 외모나 태도에 모두 젊은 활력을 지니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됐다. 이후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젊음을 유지하며 즐겁고 활기차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정관념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됐다. “대체 우리는 왜 ‘나이역할놀이’에 사로잡혀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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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이 우연히 사교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춤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 일본 영화 <쉘 위 댄스>(1996). 전형적인 40대 샐러리맨인 주인공은 춤이란 새로운 경험을 통해 무기력했던 중년의 권태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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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 왜 나이보다 젊을까 지은이는 마흔 살부터 일흔 살까지 30년을 ‘서드 에이지’ 곧 ‘제3의 연령기’라고 부른다. 인생을 4단계로 나눠보면 20대 초반까지인 ‘제1 연령기’는 학습을 통한 기본적인 1차 성장이 이뤄지며, 그 다음 ‘제2 연령기’는 일과 가정을 위한 단계로 사회적 정착생활을 하는 시기가 된다. 그 다음이 바로 ‘제3 연령기’로 40~70살이 해당된다. 중요한 점은 이 시기가 고정관념대로 인생의 쇠퇴가 시작되는 기간이 아니라 ‘2차 성장’을 통해 자기 실현을 추구해나가는 시기라는 것이다! 진짜 ‘노화기’는 그 이후인 제4 연령기가 된다.(그림 참조) 지은이는 실제 마흔 이후 30년인 제3 연령기에 자기 혁신으로 ‘2차 성장’에 성공한 이들을 직접 인터뷰해 경험담을 전하면서 인생 후반기는 착륙할 게 아니라 새롭게 이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한다면 제3 연령기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길고 가장 멋진 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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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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