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02 20:44
수정 : 2006.03.0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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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로렌츠
클라우스 타슈버, 베네딕트 푀거 지음. 안인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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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여섯 노인은 열달 동안 자서전을 구술하고 죽었다. 길고 풍부한 삶을 산 그의 ‘추억의 그림들’은 사후 13년 뒤에 두 젊은이한테 발견된다. 거기에는 새끼오리와 인연을 맺은 어린 시절 추억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반면 성인이 되어 오토바이병으로, 군의관으로 전쟁에 복무한 기록과 소련군한테 포로로 잡히던 일, 포로수용소에서의 경험 따위는 소략하다. 어째서 나치당원이 되었는지 설명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나치당원이었음은 함구한다.
<콘라트 로렌츠>(사이언스북스 펴냄)는 미출간 자서전, 주변인 구술, 편지, 일기를 통해 동물학자, 환경운동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서뿐 아니라 나치에 협력한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콘라트 로렌츠를 복원한다.
콘라트는 알에서 갓 깨어난 기러기나 오리가 처음 눈에 들어온 존재를 어미로 생각한다는 ‘각인현상’의 발견자. <솔로몬의 반지> <공격성에 대하여> <현대문명이 범한 여덟가지 죄악>의 저자이기도 하다. 만년에 핵발전소 건설 반대, 수력발전소로 인한 초지파괴 반대 등 환경운동에 앞장섰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
이 책에서는 구술 자서전이 부러든 아니든 빼먹은 나치와의 관계를 추적한다. ‘길들여짐을 통해 생겨난, 종에 고유한 행동의 장애’ 등의 논문을 통해서 그는 “길들여진 동물에서 보이는 ‘통퉁한 머리’ ‘축 늘어진 배’ 등 열등한 변이가 대도시 사람들한테서 생겨난다”면서 “인종정책은 이러한 열등한 존재들을 엄격하게 없애버리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치의 우생학적 법률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한 여타 논문과 발언들 역시 추적대상이다.
수용소 사람들이 이송되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보았다는 발뺌, 정신과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혼혈문제를 조사한 사실과 그의 얼버무리기, 종전 뒤 내무부의 ‘나치에 입당원서를 냈지만 당원증이 발부된 적이 없다’는 지저분한 면죄부로 교수자격을 회복하기 등도 까발겼다.
그의 비교동물학이 집단(민족)을 중시하는 독일 특히 나치의 사회개념 판박이인 까닭에 죽을 때까지 영미 계통 사회동물학과 화해하지 못한 사실은 그의 삶이 시대와 공간에서 자유롭지 못한 불완전한 삶이었음을 말해준다. 실험과 정량화가 아닌 관찰이라는 19세기 방식으로 살다간 마지막 박물학자였다는 평가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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