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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2 21:40 수정 : 2006.03.03 16:11

장미 가시에 찔린 불가사리의 유충. 가시 주위에 많은 대식세포가 모여 있다. 메치니코프는 이를 목격한 뒤 면역현상은 세포들이 이물질이나 세균에 반응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세포 면역설’을 주장한다.

“이물질에 당한 세포들이 직접 대항”
메치니코프 ‘세포설’ 역동성 강조했지만
에를리히 “항원-항체 수동적 화학반응”
‘액체설’로 반박 지금껏 수용
장기이식 거부반응·자가면역 설명 못해
‘나’가 ‘나’일 수 있는 조건

의학속 사상/(20) 끝나지 않은 면역 논쟁

질병은 인간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이 땅에 있어왔다. 모든 동물과 식물, 심지어는 인간과 동식물에게 병을 일으키는 세균마저도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는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의 몸속에 들어가 자신을 증식하며, 박테리오파지는 세균 속에 자신을 편입시킴으로써 생명활동을 한다.

이렇게 보면 질병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섬세한 먹이사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야생동물들의 먹이사슬에서는 대개 크고 힘센 자가 포식자인 반면, 질병의 먹이사슬에서는 육안으로 확인하기조차 어려운 작고 약한 자가 포식자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야생동물에서는 먹이가 된 동물의 생명이 즉시 단절되지만 질병의 먹이사슬에서는 드물게만 그렇게 된다는 점도 다르다. 자기보다 작은 생명체의 먹이가 된(감염된) 숙주는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기도 하지만 그 난관을 극복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질병이란 작은 생명체의 먹이가 됨으로써 오랜 기간에 걸쳐 죽음에 이르거나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면역학은 이러한 질병 개념에 근거하여 그 세부적 과정을 해명하는 기초의학의 한 분야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이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은 아니다. 면역학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첫째 그렇게 작은 생명체의 존재가 증명되고 그 생활사가 밝혀져야만 했으며, 둘째 이들 생명체와 숙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개념적 틀이 필요했다. 첫째 조건은 현미경이 발명(16세기 후반)되고 미세한 생명체의 움직임이 관찰(1675, 레벤후크)되며, 특정 세균이 특정 질병을 일으킨다는 이론적 토대(유명한 코흐의 정리)가 마련됨으로써 충족되었다. 1870년대와 80년대는 질병의 원인균이 연달아 발견된 ‘세균 사냥’의 시기였다. 탄저병(1876), 임질(1879), 말라리아(1880), 결핵(1882), 콜레라(1883), 디프테리아와 파상풍(1884)의 원인균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이들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백신과 항독소도 연달아 개발되었다. 파스퇴르의 탄저균 백신(1881)을 시작으로 광견병 백신(1885, 파스퇴르), 파상풍과 디프테리아 백신(1890, 베링과 키타사또), 디프테리아 항독소(1891, 코흐)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백신의 개발에는 18세기 말에 도입된 제너의 우두법(牛痘法)과 그보다 수백 년이나 앞서 중국에서 시작된 인두법(人痘法)의 두창(천연두)에 대한 예방효과라는 역사적 경험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예방법 개념화 위해 면역학 탄생

경험이 이론을 앞선 것이다. 이러한 예방법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경험적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어떻게’ 또는 ‘왜’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적절한 답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와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된 것 자체가 시대적 요청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과학과 의학은 미리 주어진 수많은 물음들에 답하기보다는 새로운 종류의 물음을 ‘발견’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아무튼 이와 같은 물음은 숙주와 병원체의 관계를 규명할 새로운 개념적 틀이 필요했는데 그 필요에 부응해 탄생한 것이 바로 면역학이다.

세포 먼역설의 창시자 메치니코프(왼쪽), 액체 면역설과 화학요법의 창시자 에를리히(오른쪽).
과학과 의학의 역사가 늘 그렇듯이 이 분야 역시 뜨거운 논쟁을 통해 발전해 갔다. 러시아의 동물발생학자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 1845-1916, 그림 2)는 불가사리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이던 1882년 시실리 해변에서 수집한 불가사리의 투명한 유충에 장미의 가시를 찔러 넣고 그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고 얼마 후 많은 대식세포(macrophage)들이 장미의 가시 주위에 몰려드는 것을 경이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그림 1) 그 세포들은 가시의 일부를 소화하기까지 했다. 이런 현상을 목격한 뒤 그는 질병의 예방효과를 포함한 대부분의 면역 현상은 이와 같은 세포들이 이물질이나 세균에 반응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세포 면역설’을 주장하게 된다.

이 이론은 즉각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세포병리학의 토대를 닦은 당대 최고의 의학자 비르쇼는 그의 이론을 지지했지만, 파스퇴르와 함께 세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던 독일의 코흐 진영에서는 세포설에 대항해 ‘액체 면역설’을 들고 나와 적극 대항했다.

그 대표자가 바로 1910년, 살바르산 606이란 매독치료제로 화학요법(chemotherapy)의 새 장을 열어젖힌 파울 에를리히 (Paul Ehrlich, 1854-1915, 그림 3)였다. 면역반응을 유기체와 외래 생명체 사이의 역동적 관계로 파악한 메치니코프와는 달리, 그는 면역이 물질들의 삼차원적 구조와 구성 원소들의 친화성에 따라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수동적 화학반응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이 화학반응의 주인공이 바로 항원과 항체인데 그들에게는 어떠한 애드리브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불변의 자연법칙이지 변덕스런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 또는 배우들의 자유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메치니코프의 세포면역설에서는 일정 정도의 자유가 허용된 대식세포와 외래 세균 또는 그 세균에 의해 파괴된 숙주 자신의 세포가 주인공이다. 자연법칙은 큰 테두리에서만 주인공들의 행동을 지시하고 각 세포들은 각자의 역할을 소화하며 필요할 경우 서슴없이 애드리브를 활용한다. 메치니코프의 대식세포는 숙주의 의지와 관계없이 침입자에 접근하고 반응하며 임기응변에 능한 반(半)주체적 존재이지만, 에를리히의 항원과 항체는 마치 자물통과 열쇄처럼 기계적 또는 화학적 친화성에만 의존하여 행동한다.

세포설-액체설 상호보완 주장도

일찍이 세포설과 액체설이 서로 대립적이기보다는 상호보완의 관계를 갖는다는 주장이 있었고, 1908년 노벨 위원회는 두 사람에게 공동으로 생리의학상을 수여함으로써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기계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주류과학의 입장에서는 생기론(生氣論, vitalism)의 혐의가 짙은 메치니코프의 이론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후의 의학사는 세포가 아닌 액체(화학적 치료제)의 무대였다. 1910년에는 소위 마법의 탄환으로 불리는 살바르산 606이 에를리히 자신에 의해 개발되어 속수무책이던 매독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고 1935년에는 세균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설파제가, 그리고 1940년대에는 페니실린이 개발되어 부작용 없이 치명적이던 폐렴 등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1950년대에 이르면 액체설의 치료적 성과에 가려져 있던 보다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들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 몸이 어떻게 자기 자신과 다른 유기체를 구별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의 틀을 바꾸어야 했던 것은 주로 장기이식 등에서 나타나는 면역거부반응과 자가 면역이라는 난해한 문제를 풀어야 할 현실적 필요성 때문이었다. 생각의 틀을 바꾸자 새로운 연구 분야들이 개척되었는데, 그것은 주로 ‘나’가 ‘너’가 아닌 ‘나’일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어째서 내 몸은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장기를 거부하는가? 자가면역질환에서 왜 나의 림프구는 나 자신을 공격하는가? 내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나의 구성성분들은 어째서 서로에게 시비를 거는가? 같음과 다름의 조건은 무엇인가?

현대 면역학은 주로 이러한 물음에 답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리고 부분적인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다. 몇몇 면역억제제가 개발되어 장기이식에서의 면역거부반응을 크게 줄일 수 있었고,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원천적으로 면역거부반응을 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강신익/인제대 교수·의철학
에를리히의 화학요법이 메치니코프의 세포설을 잠재웠듯이 이러한 성과들은 또 다시 우리 몸의 정체성에 관한 철학적 물음들을 잠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면역학은 우리에게 무척 귀중한 유산을 물려주었는데, 그것은 ‘나’가 ‘나’일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현대 면역학은, 나의 정체성은 수많은 ‘너’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역동적 ‘과정’일 뿐 절대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생물학적 증거를 제시해 주었다. 이러한 증거들은 다양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기도 하다. 면역학이야말로 그동안 소원했던 과학과 인문학이 건전한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매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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