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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9 20:06 수정 : 2006.03.10 17:38

김신/월간 <디자인> 편집장

자연은 여자를 선택했고
여자는 남자를 선택한다
남자는 ‘성’만 남길뿐
돈·권력·명예는
사랑 얻기 위한 교환가치

나는 이렇게 읽었다/레너드 쉴레인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

나는 언젠가부터 이 세상은 여자가 지배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여자가 이 세상을 ‘조정’한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여자가 주도권을 쥔 것만은 틀림없다. 웬 헛소리냐고. 다 이유가 있다. 현대 과학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남자가 성(姓)으로 자신의 흔적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반면, 여자는 몸속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DNA)라는 물질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줄기세포 사건으로 친숙해진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는 온전히 암컷의 것만이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남자인 내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는 아버지 것과는 전혀 다르며 어머니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말하자면 몸에 새긴 모계의 성인 것이다. 이에 반해 문서로 기록하는 성은 얼마나 불확실한가. 최근 외신에 따르면 전세계 아버지 25명 가운데 1명은 남의 자식, 곧 아내가 몰래 다른 남자와 사랑해서 낳은 자식을 자기 자식인 줄 알고 키운다고 한다.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는 은밀하지만 더 확실하게 자신의 유전자를 이 세상에 남기는 여자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성(姓)이라는 한자가 의미심장하지 않는가. 여자(女)가 낳는다(生). 혈통은 남자의 성으로 묶이지만 그것은 여자가 결정한다, 뭐 그런 뜻 아닐까.

그러나 겉보기에는 이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고 조정하는 듯하다. 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위대한 업적은 남자가 이룬 것이다. 남자는 정치·경제·법률·문화 심지어는 요리까지 모든 분야에서 권력을 쥐고 있으므로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최소한 인류 역사는 남자가 주도해왔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는 여자가 세상을 조정하지 않을까라는 내 짐작을 확신으로 바꿔준 책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섹스, 시간, 그리고 권력>이다. 우리나라 출판사가 제목을 바꿨는데, 더 잘 지은 거 같다. 찰스 다윈은 모든 종족은 자연이 선택한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그 자연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지나 사피엔스, 곧 여자를 ‘먼저’ 선택했다. 여자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남자를 만든 것이다. 아담이 갈비뼈로 이브를 만든 게 아니다. 이브가 아담을 만들었다.

인류는 발정기와 상관없이 섹스를 즐기는 유일한 종족이라고 우리는 배웠다. 그러나 더 정확한 사실은 지나 사피엔스는 언제든지 섹스를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다. 물론 남자는 여기에서 예외다. 늘 발정기 상태인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갈구하도록 설계되었다. 어느 정도인가하면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그런데 섹스를 거부할 수 있는 여자의 심리는 남자가 보기에 너무 복잡 미묘하다. 도대체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이 남자의 평생 도전 과제다. 그래서 고도의 두뇌를 가진 인류가 탄생하게 된다.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얻으려 목숨을 걸고 자기보다 크고 힘센 동물을 사냥한다. 철분이 들어 있는 고기는 늘 철분이 부족한 여자들의 사랑을 얻는 가장 확실한 선물이다. 오늘날 고기가 돈으로 바뀌었을 뿐 그 목적은 똑같다. 여자는 남자를 선택하는 데 대단히 신중하다. 그녀를 감동시켜야만 사랑할 수 있는 권리를 허가받는다. 그녀를 감동시키기 위해 정교한 언어가 발달하고 예술이 꽃을 피웠다. 인류가 일궈낸 문명이란 결과물은 사실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비롯된 것이다.


남자는 돈·권력·명예·성(姓)를 가진다. 그것이 단지 사랑을 얻기 위한 교환 가치라는 진리는 깨닫는 순간 생을 마감한다. 여자는 생명의 순환이라는 위대한 작업을 하는 주체로서 남자를 이용한다. 남자를 이용하는 대가로 돈·권력·명예·성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가 말하는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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