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09 20:09
수정 : 2006.03.10 17:38
말글찻집
빼어남, 중요함, 최고·최저 따위를 얘기할 때 특히 과장이 잦다. 사물을 부풀리거나 짜부라뜨리는 일도 사람마다 지닌 버릇이어서, 이로써 갖가지 표현 틀이 생기고, 때로는 그 틀을 깨뜨리는 재미를 보기도 한다.
우리말 ‘가장’은 견줌법에서 ‘맏높음’을 나타낸다. 영어로 치면 비교법에서 ‘최상급’에 해당할 터이다. “가장 잘한다, 가장 아름답다, 가장 작다, 가장 좋다 …” 들은 되지만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 …” 들은 말이 안 된다. ‘가장·제일·최고’가 여럿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범주를 좁혀도 문제는 남는다. 이런 기본적인 말본은 깨뜨릴 표본이 아니라 존중하여 정확히 가려 쓸 대상이다.
이는 영어 비교법을 쓴 문장(최상급·-est/most+of(in) ~)을 잘못 옮겨와 굳어진 말법이다. 대체로 우리말에서 영어투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를 표현하고자 할 때 쓸 만한 말은 우리말의 ‘맏높음’에 해당하는 ‘가장·지극히·극히·최고·최대·제일 …’이 아니라 맏높음에 버금가는 ‘아주·심히·매우·대단히·몹시·참·굉장히·사뭇·무척·퍽·자못 …’ 들이 걸맞다.
예컨대 “동대문 시장은 생명체와 같아서 서울에서 가장 활기 있는 곳의 하나다”는 자신이 있으면 “동대문 시장은 생명체와 같아서 서울에서도 가장 활기찬 곳이다”라고 하든지, 아니면 “동대문 시장은 생명체와 같아서 서울에서도 무척 활기찬 곳의 하나다” 정도로는 가다듬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 시카고대학 들어가기는 가장 어려운 학교의 하나는 아닐지라도 공부하기는 가장 어려운 학교 중의 하나다. △아이 때부터 집에 돌아오는 길이 즐겁도록 만드는 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의무 중 하나다. △국회의원 출당은 당에 해를 끼친 의원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징계 중 하나다. △요즘 양극화의 문제가 가장 큰 화두 중의 하나다 △영문이름 표기에 관련된 문의가 가장 빈번한 여권 민원 중 하나다. △돌은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사용한 재료 가운데 하나다 △자동차 산업은 에프티에이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업종 중 하나다. △한국은 무선랜 보급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서는 무선랜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좋은 글에서 이런 표현을 만나면 안타깝다. 글을 송두리째 버리기도 하지만, 그로써 곧잘 잘못된 표현을 퍼뜨리고 굳히는 구실을 아우르는 까닭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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