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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9 20:16 수정 : 2006.03.10 17:04

오빠는 풍각쟁이야
장유정 지음. 민음in 펴냄
2만2000원

‘감격시대’ 광복 맞은 민중정서 대변
트로트 효시 ‘이풍진 세월’도 왜색 아닌 민요창법
만요·신민요·재즈송 등도 전통 뿌리
실증 분석으로 ‘일제 이식론’ 조목조목 비판
‘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그려내

“거리는 부른다 환희에 빛나는 숨쉬는 거리다/미풍은 속삭인다 불타는 눈동자/불러라 " " " 거리의 사랑아/휘파람 불며 가자 내일의 청춘아//바다는 부른다 정열에 넘치는 청춘의 바다여/깃발은 펄렁펄렁 바람세 좋구나/저어라 " " " 바다의 사랑아/희망봉 멀지 않다 행운의 뱃길아//잔디는 부른다 봄 향기 감도는 희망의 대지여/새파란 지평 천 리 백마야 달려라/갈거나 " " " 잔디의 사랑아/저 언덕 넘어가자 꽃피는 마을로”

지난 1995년 광복 50돌 기념식에서 연주돼 친일가요 논란을 불렀던 ‘감격시대’다. 한편에서는 광복을 그려보며 부푼 감정을 밝고 약동적인 정서로 노래한 것으로 알고 한편에서는 일제가 전쟁준비로 뒤숭숭하던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권장한 가요라고 주장해왔다.

대학가요제 도전한 노래 열정

‘감격시대’ 노랫말을 뜯어보면 친일 흔적이 없지만 ‘어떤 대상에 대한 강한 지향성’을 드러낸다. 친일론은 그 지향성이 일제 식민정책에 대한 부응이라 해석하고 그 반대쪽은 조국 광복에 대한 열망으로 보는 것이다.

이 노래의 음반은 39년 4월 발매되었는데 함께 수록된 ‘달없는 행로’는 친일혐의가 없다. 또 ‘감격시대’ 발표를 전후한 39년 상반기에 같은 음반사 ‘오케’에서 발표한 곡은 ‘어머님 전상서’(2월) ‘세상은 요지경’(3월) 등이 보일 뿐 친일적인 노래는 없다. 이 무렵 각 음반사에서 발표한 대중가요 200여곡에도 친일 혐의가 있는 노래는 거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유독 ‘감격시대’만이 친일 의도로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다. 친일론자는 이 노래가 행진곡풍에 장조 음계이고 미래 지향적인 가사라는 점을 단서로 꼽는다. 하지만 장조 음계는 대중가요 상당수가 사용하는 음계이고 행진곡풍도 친일 군국가요와는 질감이 다르다. 노랫말 역시 친일론자들은 ‘희망봉 멀지 않다’, ‘저 언덕 넘어가자’가 ‘전진’을 선동하는 노골적인 친일 가요를 예비하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행운의 뱃길’ ‘희망의 대지’ 꽃피는 마을’이 언덕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이를 수 있는 장소인 점에서 이 노래가 막연한 낙관주의만을 표출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절 ‘불러라’ 2절 ‘저어라’ 3절 ‘갈거나’가 명령형 또는 상대의 의견을 구하는 형식으로 청자에게 힘들어도 함께 넘어가자고 권유한다. 요컨대 노랫말에 드러난 낙관주의는 함께 노력하고 고난을 겪은 뒤에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또 ‘감격시대’가 해방공간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노랫말이 광복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조응하면서 광복이 주는 이미지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대중가요에서 중요한 것은 작사자의 의도보다 그 노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다. 따라서 ‘감격시대’를 친일가요라고 규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대중 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이란 부제를 단 <오빠는 풍각쟁이야>(민음in 펴냄)의 지은이는 일제시대에 유행한 가요를 친일이라는 잣대로 잰 김창남, 이영미의 시각을 비판하고 실증과 분석에 입각해 당시의 대중가요의 진면목을 보고자 한다. 그 작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된다.

지은이는 대학원에서 구비문학을 전공하면서 옛날 노래와 춤과 사람과 그들의 삶을 만나고 대중가요 연구로 시선을 옮긴 장유정씨. <오빠는 풍각쟁이야>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 <일제 강점기 대중가요 연구>(2004)를 깁고 더한 것이다. 93년 대학가요제에 출전할 만큼 노래를 좋아하고 소질이 있었던 지은이는 예선에서 떨어지면서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고 그 열정을 학문으로 옮겨 10여년 각고한 결과물이 이 논문인 셈이다. 음악적 재능를 지녔으며 구비문학 공부를 한 그한테 일제시대 대중가요 연구는 안성맞춤이지 않았을까. ‘감격시대’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오빠는 풍각쟁이야>에서 지은이가 서 있는 자리이며 지은이가 논지를 펴고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기생 출신 가수 왕수복, 음반 가사지에 실린 ‘미스코리아’, ‘오빠는 풍각쟁이’를 부른 박향림, ‘사의 찬미’의 윤심덕, 가수 김해송, ‘미스터 콜롬비아’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박세환(맨 아래 왼쪽 타원 사진은 얼굴없는 가수 시절), 가수 고복수, 가수 황금심. (왼쪽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구비문학 관심이 가요 박사논문으로

지은이는 우선 이식론자들의 대중가요(유행가)가 학교창가에서 유행창가를 거쳐 전개되었다는 도식을 비판한다. 교과서의 형태로 유포된 (학교)창가와 음반 형태로 향유된 유행가와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 창가는 강요하고 조장할 수 있지만, 음반은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학교창가가 음반에 실린 예는 ‘학도가’가 거의 유일하다. 게다가 20년대 중반까지 유성기 음반에서 전통가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대적임을 들어 전통가요에서 대중가요로 전개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트로트가 일본유행가 번안에서 시작되었으나 효시로 꼽히는 ‘이풍진 세월’을 뜯어보면 원곡 자체가 서양곡이며 창법 역시 민요창법이어서 이식으로 볼 수 없다. 또 ‘황성 옛터’(원제 ‘황성의 적’)가 4·7음이 빠진 단음계인 것은 사실이나 우리나라 전통적인 박자인 3박자를 사용한 점과 만주와 북간도로 이주해야 했던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했던 점을 들어 이 노래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기존의 주장을 반박한다.

외래곡조 빌려 토착화 성공

재즈송, 만요, 신민요, 트로트 등 대중가요를 네 가지로 대별해 노랫말을 검토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재즈송은 삶의 비애에서 비롯한 진정성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노세’류 잡가 계보를 잇는 것으로 평가한다. 만요 가운데 ‘오빠는 풍각쟁이야’ ‘유쾌한 시골영감’ 따위는 시대상을 잘 반영할 뿐더러 대구법, 반복법 등 민요의 방식을 계승하며 ‘시큰둥 야시’는 사설시조에 닿아있다고 본다. 트로트 역시 전통의 일방적 쇠퇴와 새로운 양식의 대체라는 비극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당대 민중의 정서를 절실하게 드러내 공감을 샀다며 외래의 곡조를 빌려와 토착화해 성공한 갈래라고 주장한다. 고향을 잃고 헤매는 나그네 심사를 표현한 ‘황야의 고객’을 고려말 혼란기 유민의 노래인 ‘청산별곡’과 비교한 것은 무척 인상적이다.

책의 제목을 선정적으로 바꾸고 얼굴없는 가수, 최초의 싱어송라이터, 창작가요의 첫 모습 등 눈요깃거리를 끼워넣어 ‘논문의 무거움’을 덜고자 한 편집자의 의도가 꽤 도드라진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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