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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각/소설가, 풀꽃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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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에 쫓겨 안데스 밀림 속으로 숨었다가
500년 만에 모습 드러낸 코기족
아우여, 대지가 쇠락하네…더는 약탈하지 말게…
흐느끼듯 절박한 메시지 토해내고
다시 은둔의 땅으로 사라졌다
녹색 에세이/달려라 냇물아
콜롬비아의 안데스 산맥 북쪽 기슭, 시에라 데 네바다에는 ‘코기’족이 살고 있다. 본래 그들은 산 중턱에 살았으나 콜럼버스가 침공한 이래 안데스 밀림 깊숙이 해발 6천m에 이르는 높은 산으로 쫓겨 올라가 살고 있다. 그곳은 해안에 위치한 산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산 중턱이나 해변 가까이에 살았을 때에는 황금 세공으로 빛나던 타이로나 문명을 일으킨 족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나타난 이래 타이로나 문명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스페인 사람들과의 대면은 참혹한 살상과 파괴를 낳았다. 문명은 잃었지만 그들은 단지 살아남았다는 슬픈 성취를 얻은 뒤, 지난 50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밀림 밖 세계에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살았다.
나중에 <비비시(BBC)>의 다큐 프로듀서(엘런 이레이라)를 만난 코기족의 한 ‘마마’가 구전되어 오는 쓰라린 과거를 회상한다. 마마란 마을마다 있는 일종의 샤먼이다.
“태초에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형제처럼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가르쳤지요. 우리는 평화로이 살았고 어떤 것도 팔거나 사지 않았소. 만약 우리가 경작지를 만들고 씨를 뿌리고 그러고 나서 그것을 판다면, 그것은 마치 ‘어머니’의 가슴이나 다리, 팔 가운데 하나를 잘라내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평화로이 살았지만, 콜럼버스가 오면서 변하고 말았소. 그들은 읽고 쓰는 법을 알았소.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지요. ‘여기 있는 이 땅은 내 것이고, 저기 있는 저 땅도 내 것이고, 여기 위에 있는 이것도 내 것이다’라고요. 우리 고키에게 어머니는 그런 것을 절대로 가르치지 않았다오.”(<영혼의 부족 코기를 찾아서> 샨티 펴냄)
코기의 어머니가 가르친 사상과 콜럼버스의 어불성설을 한번 비교해 보자. 코기의 어머니가 가르친 내용이 단순하고 조잡한 원시사상이라고 어찌 함부로 치부할 수 있을까. 누가 더 도덕적이고 누가 더 세계의 건강에 보탬이 되는 사람들일까. 콜럼버스는 나중에 스페인 왕에게 자신이 에덴동산을 발견했다고 보고한다. 그는 자신이 당도한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공허한 탐험가였고, 모험과 살육을 구분할 능력이 없는 탐욕스러운 자였다. 그의 오만한 자가당착과 폭력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서양문명의 패권주의를 앞서 예시하고 있었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나라 농토에 군사기지를 세우며 긴장을 완화하겠다는 미국 같은 나라의 행태 말이다.
코기족이 5백년만에 ‘다른 사람들’을 다시 만난 것은 오로지 콜럼버스의 후예들이 진행시킨 불안하기 짝이 없는 세계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전세계의 안녕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스스로 ‘형님’이라 부르고, 바깥 세계 문명권의 사람들을 ‘아우’라고 부른다. 그들을 여전히 한심한 미개인으로 여기는 이들은 코기족의 건방진 호칭에 심기가 상할지 모르나, 아우들의 구원과 세계의 안녕 때문에 책임감을 느낄 정도의 기품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형님'이라 불러 마땅할 것만 같다.
“이제까지 우리는 아우를 무시해 왔소. 심지어 아우가 잘못한 것에 대해 한번도 매를 들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세계를 더 이상 우리 혼자서 돌볼 수 없게 되었소. 아우가 너무나 많은 피해를 입혀왔거던요. 아우는 이런 사실을 보고 이해하고 책임을 져야만 해요. 이제 우리는 함께 일을 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죽어갈 테니.”
코기족이 하는 말이다. 그들은 세계가 팔꿈치 위에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있는데, 아우들인 우리가 이 세계를 너무 세차게 흔들어대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탐욕스러운 존재, 도덕적으로 바보 같은 존재라고 보고 있다. 세계는 지금 콜럼버스가 퍼뜨린 질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게 그들의 세계진단이었다. 흐느껴 울고 통곡하듯이 노래하는 마마를 통해 전달하는 코기족의 메시지는 절박하기 짝이 없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정신세계가 하나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우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마마는 한탄했다. 마마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대지가 쇠락하고 있다고, 쇠락은 우리 모두를 쓰러지게 할 것이라고. 모두 병에 걸릴 것이라고, 앞으로도 수많은 병이 생겨날 것이라고, 어디에도 치료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그것은 아우가 세계의 법칙의 기본토대를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제발 더 이상 약탈하지 말라고, 나무를 베고 대지에서 너무 많은 석유를 뽑아내 대지가 무너지려 하고 있다고, 우리는 대지를 보호해야 한다고, 존중해 줘야 한다고, 아우가 대지를 존중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그래! 여기 내가 있다! 나는 우주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 아우들이 그렇게 너무 자신만만하게 믿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아우들의 앎이란 그저 세계를 파괴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고, 전 인류를 파괴하는 그런 앎일 뿐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그런 절박한 메시지를 울면서 노래로 전한 뒤, 그들은 다시 500년간 지속된 은둔의 땅과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이게 벌써 15년 전 일이다. 코기족은 다국적기업 옥시텐탈 페트롤륨의 석유개발 프로젝트에 죽음으로 맞서 싸웠던 우와족과 같은 형제 부족이다. 처음에는 메시지 전파자로서 선택받은 데 대해 얼떨떨해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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