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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주/<안티쿠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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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십 넘어 든 낭패감
닫혔던 눈 열어주고
살아있음의 환희 전해줘
나는 이렇게 읽었다/조지프 갬벨·빌 모이서스 <신화의 힘>
사십을 훌쩍 넘기며 꿈을 자주 꾸었다. 심한 근시인 나는 렌즈를 착용하는데 꿈 속에서 고무패킹처럼 크고 두꺼운 렌즈를 눈에 집어넣기 위해 기를 쓰다가 잠을 깨곤 했다. 렌즈를 넣지 못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그 낭패감은 잠을 깨어서도 이어졌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무렵 나를 송두리째 뒤흔든 화두이다. 그토록 생경하면서도 확실한 명제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아이들도 잘 성장하였고 남편도 사회적으로 자리를 잘 잡아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소위 ‘나는야 대한민국의 중산층 가정의 주부.’ 남는 시간을 취미활동에 좀 쓰고 건강관리에 힘쓰면서 살기만 하면 되는, 팔자좋은 중산층 중의 한사람이 된 것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냐구? 여지껏처럼 살면 되지. 어릴 적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딸로, 학생시절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는 모범생으로, 대학 졸업 뒤엔 좋아하는 남자 만나 결혼하고 아이낳고 키우고 남편 내조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자타가 인정하는 성공적인 삶이었지.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생명체로 태어나 종족 보존의 임무를 수행한 ‘나’라는 한 개체가 자연계에 존재해야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조셉 캠벨과 빌 모이어스의 대담집인 ‘신화의 힘’.
처음에는 그저 ‘살아 있는 이유'가 아니라 ‘살아있음의 황홀함'을 느끼게 된다는 그의 약장수 같은 말에 반신반의 하면서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나는 닫혔던 나의 눈이 하나하나 열리는 듯한 희열을 느꼈다. 중간중간 가슴이 벅차서 한번씩 큰 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그가 약장수라면 나는 기꺼이 그가 파는 약을 사 먹으리라.
특히 신화에 나타난 고대인들의 의례에 관한 의미분석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해석은 읽는 것 자체가 황홀경이었다
나는 테세우스였고 그는 아리아드네였다. 그가 마련해 준 실타래를 잡고 나는 미궁을 빠져 나가는 심정이었다.
제우스 헤라의 그리스의 신화 정도만 알고 있었고 황당무계하고 비현실적인 옛날 이야기 정도의 상식밖에 없었던 나. 그를 통해 신화는 ‘미스터리움 트레멘둠 에 파스키난스’(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s)-무섭고도 놀라운 신비-로 내게 다가왔다.
나의 눈뜸은 내가 이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로부터 시작하여 인생에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에 대한 이해로 이어져 자연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었다. 나의 내면적인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살아있음의 환희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는 사이비 약장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캠벨은 말한다.
“우리는 이제 혼자 모험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게 되어 있다. 시대의 영웅이 우리를 앞서 이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궁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제 영웅이 길에다 깔아 놓은 실을 붙들고 따라 가기만 하면된다. 그러면 알게 된다. 무서운 괴물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는 신을 만나게 되고 남을 죽여야 하는 곳에서는 저 자신을 죽이게 되며 외계로 나가야 하는 곳에서는 우리 존재의 중심에 돌아오게 되고 외로워야 할 곳에서는 온 세상과 함께 하게 될 것임을….”
캠벨처럼 우리가 내적 정신적 경지에 이르지 못 할지라도 신화가 존재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그 모습이 많이 다를 것이다
급변하는 21세기에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는 우리는 모두 영웅이 아닐까. 어머니의 자궁을 통과하는 첫 시련을 이겨냈으며 여성 남성으로 탈바꿈하는 변신의 과정을 무사히 치러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영웅적으로 사랑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화를 쓰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나의 신화는 <안티쿠스>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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