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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난 뒤, 인체실험에 관여한 23명 독일 의사들과 과학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이 열렸다. 139번에 걸친 공판 끝에 1947년 8월 19일 판결을 내리면서, 재판부는 ‘허용 가능한 의학실험’이라는 10개 조항의 강령을 발표했다. 이것이 국제적으로 채택된 사상 최초의 의학연구윤리 강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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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731부대의 ‘잔악’ 생체실험 단죄한
‘뉘른베르크 강령’ 인체실험 원칙 내세워
“국익·난치병 치료·의학발전보다
피험자 자발적 동의가 최우선”
이후 ‘헬싱키 선언’에서 윤리규정 구체화
의학속 사상/(22) 생명의료윤리의 대두-뉘른베르크 강령과 헬싱키 선언 현대사회에서 생명의료윤리의 핵심적인 키워드는 ‘피험자의 자발성’과 ‘공공 감시’(IRB, 즉 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대표적인 감시기구이다)이다. 나치의 잔악한 생체실험을 경험한 인류는 인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연구에 사용하는 경우, 피험자나 제공자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나치의 인체실험에 참여한 의사와 과학자들은 의학 발전, 난치병 치료, 국익 등 연구가 가져올 이익을 이유로 피험자들의 인권을 침해한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하였다. 하지만 ‘뉘른베르크 재판’은 그러한 변명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연구 목적이 숭고하고 그 결과가 가져올 이익이 클지라도 피험자의 자발적인 동의 없이는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고 선언하였다. 뉘른베르크 재판보다 한 세기 앞서, 현대실험의학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프랑스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는 “설령 과학과 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다른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에 도움이 될지라도, 피험자에게 조금이라도 해로움을 줄 수 있는 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갈파한 바 있었다. 당대 최고의 생명과학자가 그에 걸맞은 생명과 인간 존중의 모범을 보였던 것인데, 인류는 사상 최악의 경험을 통해 베르나르의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2차대전의 승전국도 반인륜적인 인체실험 혐의가 다분하지만, 특히 독일과 일본(731부대와 100부대)은 강제수용소의 수용인 등을 대상으로 온갖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이러한 연구에는 세균전, 화학전에 관련된 실험과 압력, 추위 등 물리적 요인에 관련된 실험들이 있었다. 특히 악명 높았던 멩겔레((Josef Mengele)는 다음과 같은 실험들을 자행하였다. 멩겔레가 행한 세균학 실험은 쌍둥이 가운데 한 명에게 세균을 주입하여 죽으면 나머지도 같이 죽여 두 시체의 장기들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어떤 쌍둥이들은 죽을 때까지 얼마만큼 혈액을 뽑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에 사용하기도 했다. 피험자들은 거세되기도 했고, 수혈 반응을 보기 위한 실험에 쓰이기도 했다. 멩겔레는 쌍둥이의 혈관과 장기들을 붙여 샴쌍둥이를 만들려는 실험도 했다. 이런 예는 끝이 없을 정도이다. 2차대전이 끝난 뒤인 1945년 10월, 전쟁범죄, 반평화범죄, 반인류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하도록 하는 국제협약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이 협약에 따라 인체실험에 관여한 23명의 독일 의사들과 과학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이 열렸다. 1946년 12월 9일에 시작된 재판은 139번에 걸친 공판 끝에 1947년 8월 19일 판결이 내려졌다. 세균실험 쌍둥이끼리 ‘대조군’
재판부는 나치 의사들과 과학자들에 의해 행해진 인체실험을 판단하기 위한 의학적·윤리적 기준을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1803년 영국 의사 토마스 퍼시벌이 만든 윤리강령, 미국의사협회의 1847년 윤리강령, 1865년 베르나르가 제안한 인체실험 원칙 등을 참조하였다. 독일은 불완전하긴 하지만 1931년에 인체실험에 관한 윤리지침을 제정한 바 있는데, 나치 의사들은 이 지침을 아예 무시하였다. 재판부는 오랜 숙고와 논의 끝에 판결문 외에 강령 10개 조항도 함께 발표하기로 결정하였다. 나치 전범들의 단죄뿐만 아니라 앞으로 비슷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허용 가능한 의학실험>이라는 제목의 이 10개 조항이 뉘른베르크 강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재판부는 강령의 서문에서 “인체실험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사회에 이익과 선을 가져다 주며, 다른 방법으로는 마찬가지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재판부는 도덕적, 윤리적, 법적 개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특정한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였다”라고 적시하였다. 즉, 이 강령은 인체실험에 대한 견고한 기준을 확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0개 조항 중에서도 핵심은 다음과 같은 제1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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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았던 멩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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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익/서울대 교수·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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