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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3 19:35 수정 : 2006.03.24 14:28

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문화인류학과

병원은 이제 질병치료만 하지 않는다
출산과 임종, 성형과 다이어트…
삶의 질을 다듬어가는 곳
병원 같지 않은 병원에서
의료질 못지않은 친절 서비스
웃음치료로 치유의 공동체 가꾼다

생활 속의 문화사회학

“온통 쓰레기와 오물 투성이였다. 입원한 환자들은 두 달이 다 되도록 같은 겉옷을 입고 있었고, 침대보는 한 달에 한 번 세탁을 하고 갈았다. 급식은 굶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형편없었다. 하지만 병원으로 술을 들여오는 것만은 자유로웠다.” (황상익 편저 <재미있는 의학의 역사> 중에서)

6.25 전쟁 때 미군들이 포로나 피난민들의 몸에 디디티(DDT)를 뿌리는 장면이 여러 사진들로 전해진다. 그 무렵을 살았던 기성세대는 선연하게 기억한다. 이, 벼룩, 빈대 등 잡다한 벌레들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창궐하여 잠 못 이루던 밤들, 한번 전염병이 돌면 온 마을이 두려움에 휩싸이고 환자가 있는 집은 격리되던 상황, 불과 반세기 전까지 그러했다. 그런데 그 점에서는 서양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위에 인용한 글은 19세기 초 유럽에서 빈민들이 이용하는 병원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가 지금 평범하게 누리는 청결함과 공중위생 그리고 영양상태가 보편화된 것은 불과 한 세기 남짓의 일이다.

근대의학은 고도의 전문 지식과 기술로 신체를 다룬다. 병원은 그 지식을 적용하는 거대한 기구다. 거기에서 환자는 그저 환자일 뿐이다. 권력자든 부자든 저명인사든 모두 의료진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몸뚱아리가 된다. 환자복과 흰 옷으로 구별되는 두 집단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위계의 장벽이 가로 놓여 있다. 그래서 의사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신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아이들이 병원 놀이를 즐기는 것은 그렇듯 긴장어린 소통 또는 권력의 쾌감을 가상으로 체험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후 의사들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도산하는 병원들이 생기면서 ‘고객’ 유치의 치열한 경쟁이 불붙었고 서비스라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자세를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병원 공간 자체가 보다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하기 위한 디자인이 섬세하다. 그래서 요즘 건축되는 병원들은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의 분위기를 띤다. 원래 병원 내부의 벽면에는 대개 흰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는 오염 물질을 쉽게 식별할 수 있고 (수술복이 초록색인 것도 피가 묻으면 까맣게 변하기 때문이다), 위생적인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흰 색 대신 옅은 농도의 다채로운 색깔들이 입혀진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일부 병원의 경우, 화강석이나 목재로 벽면을 꾸며 호텔 같은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층에 산뜻한 식당이나 커피숍 등의 매장을 다양하게 배치하여 마치 번화가에 온 듯한 활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병원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는 여전히 유명세와 규모다. 작은 병원들의 입구에는 원장의 졸업장이 진열되어 있고, 일류대 출신 의사들은 대학의 이름을 따서 병원 이름을 짓기도 한다. KTX(고속전철) 개통 이후 서울에 환자들이 더욱 몰리고, 응급환자들이 고속도로를 타고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달려오는 ‘모험’을 감행하는 까닭도 뭔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병원들은 첨단 장비들을 구비하고 있고, 의료진의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을지 모른다. 하지만 환자들이 폭주하면 진료의 질은 떨어지기 쉽다. 특수한 기기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질환이 아니라면, 작은 병원에서 꼼꼼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더 낫다.

현대의학은 치료에서 심리의 영향을 점점 강조하는 추세다. 환자들이 병원에 대해 느끼는 불만도 시설보다 의료진의 불친절에 더 많이 쏠린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박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더욱 화가 난다. 당연히 치유는 더디어진다. 몇몇 설문 조사 결과를 보아도, 한국인들이 가장 좋게 평가하는 의사의 자질은 뛰어난 실력이 아니라 병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잘해주는 자상함이다. 의사들에게는 고도의 전문지식 이상으로 돌봄과 보살핌의 마음씨가 더 요구되는 것이다. 중병을 이기고 퇴원하는 어느 환자에게 주치의는 “당신이 다시 올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군요.”라는 한 마디로 크나큰 용기를 주었다는데, 언어의 힘을 적절하게 구사할 줄 아는 것이 이 시대 의사들의 능력이리라.


그렇듯 병원은 사람의 소중함을 새삼 확인하는 곳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쉼터가 될 수도 있다. 육신의 궁핍함에 처해 세상과 타자를 재발견하고, 죽음에 마주하여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래서 병실에서 환자들은 서로를 겸허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동병상린의 치유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간혹 병원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찾는 이들도 있다. 세계적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원래 축구 선수였다. 그런데 부상으로 입원하고 있던 중 병문안온 친구에게서 선물받은 기타로 노래를 하다가 재능을 발견하여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옆의 환자가 그림 그리는 것이 부러워 따라 하다가 화가가 된 사람도 있다. 간호사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른 환자의 러브스토리도 많다.

병원은 이제 질병의 치료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출산과 임종 그리고 장례식이 모두 병원에서 이뤄지는 시대다. 뿐만 아니라 성형에서 다이어트, 건강 상담, 정기 검진에 이르기까지 삶의 질 가운데 많은 부분을 다듬어주는 곳이 병원이다. 긴박한 응급실이나 수술실, 딱딱한 의료 기기와 무미건조한 진료 등으로 연상되는 병원의 이미지도 바뀌어간다. 동네의 작은 병원들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집보다도 아늑하고 예쁘장하다. 일부 대형 병원은 로비에 미술품을 상설 전시하며 정기 연주회를 개최한다. 그것은 단순히 손님을 끌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웃음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에서 확인되듯이, 유쾌한 마음은 막강한 치유력을 발휘한다. 환자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지 못하는 병원은 이제 도태된다. 지금 병원은 ‘참살이’(웰빙)의 발전소로 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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