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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3 19:57 수정 : 2006.03.24 14:29

범우사 ‘발자크의 해학 30’

아깝다 이책

‘발자크’라는 이름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인간 희극>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그 누구라도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정리하기 위해 써내려간 그 작품의 유명세를 실감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뜻밖에도 발자크는 그가 가장 오랫동안 사랑했던 귀부인 에블린 한스카에게 이런 내용을 적은 편지를 보냈다.

“만약 나의 작품 중에서 후세에 남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30편의 해학 단편들(Les Contes Drolatiques)>일 것이오.”

발자크가 하루 15시간씩 글을 쓴 목적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사업실패에 따라 지게 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적 목적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당시 프랑스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내면을 밝혀 고발하고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목적을 달성시킨 작품이 바로 <인간 희극>이었다. 하지만 발자크 스스로도 밝혔듯이 그의 두 번째 목적을 달성시킨 진정한 작품은 바로 <발자크의 해학 30>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30편의 해학 단편들>이었던 것이다.

북유럽풍 르네상스를 개시한 대문호 라블레를 존경한 발자크는 그의 문체와 해학, 그리고 풍자를 사용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한 뒤, 작업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백 편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결국 아쉽게도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30편의 이야기를 쓰는데 그쳤다. 하지만 편집과정에서 그 30편의 이야기들 하나하나의 내용을 주의 깊게 읽어보니, ‘일단 이정도만으로라도 그는 분명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래서 발자크도 계획을 변경하여 나머지 이야기들을 포기하고, <인간 희극>의 집필에 힘을 기울였겠지만 말이다.

원제목 의 정확한 의미는 아마도 <우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발자크 스스로도 각 편의 머리말 부분에서 ‘이 책을 읽고 웃으라. 어차피 그러라고 썼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 ‘과연 이것이 단순히 웃고 즐기며 가볍게 넘어갈 수준의 이야기들인가!’ 싶을 정도로 사랑과 우정 등 인간관계에 대해 심도 깊고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뫼동의 쾌활한 사제의 설교>라는 소제목으로 소개된, 라블레가 왕에게 들려주는 ‘왕비로 맞이한 암컷 생쥐의 미모에 빠져 간신배들을 등용함으로서 식량창고의 관리라는 자신의 막중한 임무를 그르치고, 결국 식량창고의 원래 주인에 의해 사형에 처해진 뾰족뒤쥐대왕 이야기’의 경우, 놀랍게도 우리의 <화왕계花王戒>를 연상시키는 점이 있다.

또한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30개의 진지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이 일개 ‘우스개 이야기처럼’ 술술 읽어나갈 수 있도록 만든 대문호 발자크의 솜씨에 있다. 하나의 세련된 프랑스 요리처럼, 읽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러한 내용이 19세기 초반의 어느 위대한 요리사의 펜에 의해 해학과 풍자로 맛을 낸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다만 자극적이고 빨리 읽어나갈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같은 작품들을 찾는 현대 젊은 독자들의 취향이 ‘대문호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부담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대문호도 사실 대중적 작품을 쓰던 사람이었기에 이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발자크는 이 ‘가볍게 즐길 수도 있는 요리’를 만들어냈을 터. 부디 이 책이 ‘어려운 고전’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히 그리고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책임을 독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장웅진/범우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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