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23 20:01
수정 : 2006.03.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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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달리는가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정병선 옮김. 이끼북스 펴냄.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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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하나에 100km 울트라마라톤 우승한 ‘달리는 과학자’
“나는 동물이 되었노라” 선언하며
동물의 수분조절법·연료저장법 등 ‘커닝’
자전적 에세이로 엮은 경이로운 달리기 세계
왜 달리는가. 달려본 사람은 안다. 그 물음이 얼마나 허랑한지. 주로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다그쳤을 그 물음, 왜 왜 왜? 답을 어물쩍 흘리기도 전에 엔도르핀이 마구 솟구친다면 당신은 진정한 주자,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따위의 개똥철학을 읊조리면 얼치기 달림이. 흘러내리는 뱃살과 처진 엉덩이가 올라붙어 체형이 정리될 즈음 달리는 기쁨은 어느 새 온몸에 속속들이 박힌다. 무시로 새벽잠을 깨우고 운동화를 신길 것이다. 꼭꼭 숨어있던 장딴지 근육, 쿵쾅대는 심장의 거친 펌프질, 모세혈관까지 전해지는 저릿한 혈류…. 두 다리를 풀쩍거리는 순간 전해오는 ‘호모 에렉투스의 추억’은 잊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아참, 우리는 타고난 주자였지. 400만 년 전 숲을 뛰쳐나와 영양을 좇으며 사냥하던 시절이 있었어.’ 야수성이 살아나며 퇴화된 몸의 기능이 서서히 깨어나는데….
이내 풀죽고 만다. 가지뿔영양은 시속 98㎞ 주파, 경주마보다 두 배 빠른데다 <네이처>지가 꼽은 세계 최고 달리기 선수란 말이다. 군살 한 점 없이 잘 빠진 단단한 근육질의 이 녀석을 어떻게 따라잡지?
영양을 좇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 이름하여 울트라마라톤맨 베른트 하인리히. 보기 드물게 ‘달리는 과학자’다. 미국 버몬트 주립대학 생물학과 교수인 그가 하는 일이라곤 메인 주 숲 속에서 자연을 관찰하거나 달리거나. 몸이 언제나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걷는 법이 없다고 한다. 이력을 보라. 마흔 한 살에 도전한 미국 100㎞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그는 보기 좋게 일등을 먹었다. 20년 전 그가 세운 기록 6시간38분21초는 아직까지도 40세 이상 나이로는 깨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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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동물 최고의 운동선수인 영양은 허파 부피가 인간의 3배나 되고 초대형 심장을 가져 헤모글로빈 집적도가 높다. 몸에 지방이 거의 없어 시속 98km로 주파한다. 이끼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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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달리기 선수 ‘영양’
<우리는 왜 달리는가>는 20년이 지나도 달리던 순간순간이 생생히 자신의 몸에 새겨진 그 ‘사건’을 다룬다. 부제가 이색적이다. ‘동물들이 가르쳐준 달리기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라니, 울트라마라톤과 동물의 조합은 뭐람? 하인리히가 뒤늦게 펜을 집어든 이유는 이렇다. “구경꾼들이 보기에는 울트라마라톤이 페인트가 마르는 걸 지켜보는 정도로만 흥미 있을 뿐이지만 울트라마라톤은 생리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에서 지구상의 그 어떤 스포츠보다 더 도전적이다.”
왜 아니겠는가. 100㎞를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입이 쫙 벌어질 판에 우승을 목표로 함에야 몸에 대한 치밀한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법. 하인리히는 속도와 지구력을 갖춘 몸을 만들기 위해 독특하게도 동물의 습성을 면밀히 관찰해 ‘커닝’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박사란 별명을 지닐 정도로 동물과 벗하며 살았던 소년. 고교시절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나간 첫 대회에서 우승을 했던 감격의 그날, “나는 동물이 되었노라”고 선언한다. 그 말은 너무나 근사해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고 한다. 때론 균형 잡힌 식사를 위해(?) 소 사료를 먹었을 정도로.
자, 이제 100㎞를 달리기 위해 ‘동물 동료’들에게 비법을 전수 받을 차례. 장거리 달리기는 속도보다 지구력이 관건이다. 지구력은 체온과 수분균형을 적절히 조절하는 동시에 근육과 간과 체지방에 포함된 연료를 동원하는 능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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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달리는가>를 쓴 베른트 하인리히가 1981년 미국 시카고 100km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달리는 모습. 이때가 마흔하나였다. 이끼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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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 저장법=운동에너지의 1차 연료는 탄수화물로 만들어지는 ‘글리코겐’이다. 100㎞를 완주하려면 연료 고갈을 두 번 이상 경험해야 한다. 2차 연료인 체지방은 단시간에 꺼내 쓰기가 힘들다. 이 때 개구리 수컷들의 구애의 합창은 힌트를 준다. 개구리들은 마라토너와 비슷한 최대 산소섭취량의 60%를 쓰면서 울어대는데 때론 긴 울음소리 대신 짧은 울음소리를 반복하며 에너지 고갈을 막는다. 울음소리 사이 휴지기에 글리코겐의 일부가 복원되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 몸에 응용하면, 긴 보폭보다 짧은 보폭이 장거리에 유리하고 훈련만큼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
물의 경제학=근육이 달아올라 과열되면 인간은 땀을 배출한다. 수분의 손실이 오는 것이다. 열사에서도 탈진하지 않는 낙타의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낙타의 혹은 마라토너의 영양제인 ‘파워바’와 같은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단열과 발열을 맡는다. 모자를 쓰라는 말씀. 또 낙타는 물을 한꺼번에 마셔 혈액이 묽어져도 별 문제 없다. 마찬가지로 강력한 콩팥을 지니고 있어 적은 물로도 많은 노폐물을 걸러내는 농축 오줌을 눈다. 물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동물이다. 반대로 물을 낭비하는 시스템을 가진 인간은? 물을 조금씩 자주 마실 것.
개에게서 호흡법을=개는 걷거나 뛰는 보폭에 맞춰 호흡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연결장치가 있어 앞다리를 앞으로 뻗을 때 공기를 흡입하고 뒤로 당겨 흉강의 부피가 줄어들면 숨을 내쉬게 된다. 호흡역학에 필요한 에너지를 이런 식으로 줄인다. 팔 젓기와 호흡을 연동하며 개를 따라해 보자. 들이마시면서 두 걸음, 내쉬면서 한 걸음, 호흡과 걸음 주기의 리듬을 무의식중에 맞춘 채 마지막 단계에서 숨을 폭발적으로 내쉬라. 폐가 신선한 공기를 담아두는 시간을 극대화하라. 입을 벌린 채 뛰는 가지뿔영양처럼.
달리기는 순수하고 강렬한 열정
하인리히는 1981년 울트라마라톤에 출전할 당시 변변한 훈련 지침서가 없었기에 동물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꿀주머니를 내장해 비행 지구력이 우수한 뒤영벌을 본따 꿀 1리터를 마시고 산을 한달음에 달렸으나 이후 탈수증에 시달렸던 실패담, 깊이 들어앉은 체지방을 꺼내 쓰려 빈속으로 극한까지 달렸던 기억, 그러다 배가 고파 생면부지에게 마른 빵을 구걸했던 일화도 흥미롭다.
‘왜 달리는가’라는 물음에 지은이는 “달리고 싶다는 근본적인 단순성에 매료됐기 때문”이며 “달리기는 전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강렬한 열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떻게 달리는가’는 궁극적으로 대초원을 질주하는 영양을 쫓기를 꿈꾸면 된다는 것이다. 그 원동력은 재미란다.
바야흐로 공동체의 상징적 사냥을 시현하는 마라톤의 계절, 얼룩말이 되어볼까. 영양이 되어볼까.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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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궁금하다-저자와의 가상문답
-달리기 전후 음식물을 먹으면 토할 때가 있다.
=음식물 소화와 달리기는 상호 배타적이다. 위장의 내용물은 체중을 늘리며 근육 활동에 쓰여야 할 귀중한 혈액을 앗아간다. 달릴 때 음식물이 위에서 출렁이면 무력감을 느끼다 간혹 토하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단거리를 빨리 질주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에서 오는 적응 반응일 것이다.
-운동화를 신지 않고 맨발로 뛰는 것이 효과적인가?
=뜀박질은 아킬레스건과 인대 사이의 팽창과 수축, 발바닥의 장심(움푹한 곳)이 통통 튀는 탄력성의 메커니즘이다. 스프링 역할을 하는 장심은 축적되는 에너지의 70%를 다음에 내딛는 발걸음으로 되돌릴 수 있다. 따라서 트랙은 장심이 갖는 탄력성 수치(5~7㎜)와 일치할 때 충격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무작정 쿠션이 좋은 신발을 신는다고 에너지를 되돌려 받을 수 없는 이치다. 고무공이 단단한 표면에서 더 높이 튀어 오르지 않는가. 단, 발이 아주 튼튼할 때만 맨발로 뛰길.
-체지방이 더 많은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난 마라톤맨이 될 수 있다는데?
=평균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명쾌히 해명할 수 있는 단서는 없지만 우선 생물학적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겠다. 여성에게 있어 체지방은 임신과 관련이 깊다. 체지방을 잃으면 배란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재생산이라는 임무가 달리기보다 우선순위로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밖에 발의 길이, 골반구조나 체중분산으로 인한 남녀 차이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1㎞ 지점과 30㎞ 지점에서 속도가 급격히 감소하는 이유는.
=상이한 생리적 과정이 발현되는 지점이다. 1㎞ 지점은 무산소 대사에서 유산소 대사로 이행하는 시점이고 30㎞지점은 글리코겐을 태우는 탄수화물 대사에서 복부 지방을 끌어다 쓰는 지방 대사로 이행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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