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23 21:42
수정 : 2006.03.24 14:30
말글찻집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실제로는 많이 쓰이는 말에 ‘더 이상/ 더이상’이 있다. 국어순화운동가 이수열 님은 ‘더 이상은 말이 아니다’란 글에서 고등학교 국어책에 실린 몇몇 사례를 들추어 그릇됨을 지적한 바 있다. ‘덜 이하’란 말이 없듯이 ‘더 이상’이란 말도 없다는 얘기였다.
‘이상’에 앞 말을 딛고 새롭게 강조하는 쓰임이 있긴 하다. ‘그 이상, 이 이상’에다, 매김꼴을 앞에 두고 ‘이미 그렇게 했으니’란 뜻으로 쓰는 ‘-ㄴ 이상’이 그렇다.
사전에는 왜 없는가? ‘더 이상’은 말하자면 낱말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이 반드시 온전한 낱말만 갖추어 올리는 것은 아니다. 속담도 이은말들도, 용례도 갖추어 올린다. ‘더더욱, 더욱더’도 본디 ‘더 더욱, 더욱 더’였으나 자주 쓰다보니 하나의 낱말로 굳어진 것으로 여겨 챙겨 올린 것이다. 일반인들도 절반 정도는 띄어쓰는데, 이는 하나의 낱말이 아니라는 분별이 작용한 까닭이다. 앞으로 나올 사전들에서 이 말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해진다.
한편으로, 이 말을 많이 쓰게 된 연유로 짚이는 게 있다.
‘더 이상’은 반드시 부정문과 어울린다. 곧 뒤에 ‘안 된다, 못한다, 아니다,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무리다, 어렵다 …’ 따위를 함께 데리고 다닌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어 비교법 문장에서 비슷한 꼴을 만나게 된다.(no more ~, no longer ~, not ~ any more, not ~ any longer, not one more ~) 이들을 한결같이 ‘더 이상 ~ 아니다’ 식으로 뒤치고 가르친다. 이로써 번역문이 아닌 일반 문장은 물론, 입말로까지 버릇해 쓰는데, 어른들도 익어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생각을 못한다.
△더이상 성역이 아니다 △더이상 ‘금빛 질주’는 없다 △더이상 연구원들을 농락하지 마십시오 △그런 희망을 우리에게 주셨던 교수님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독도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었다 △더이상 안통해! △더이상 감출게 없습니다 △‘디렉터스 컷’ 소속 감독들은 스크린쿼터 축소를 둘러싼 논란이 한-미 자유무역 협정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본질은 외면된 채, 한국영화계 전체를 매도하는 방향으로 왜곡·증폭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더 이상 이 사태를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여기서 ‘더 이상/더이상’들은 두루 ‘더는, 이제, 이젠, 더, 다시, 다시는, 또, 절대 …’들로 바꿔 써야 할 말들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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