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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3 21:44 수정 : 2006.03.24 14:30

이용재/건축평론가 겸 택시기사

사기판 건축 현실에 지쳐 읽기 시작한 책
2500년 전 가르침 이렇게 와 닿을 수가!

나는 이렇게 읽었다/김형효 지음 <사유하는 도덕경>

2002년 온갖 거짓과 말 뒤집기, 눈알 돌리기가 성행하는 건축현실에 지쳐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돌아가신 부친이 남긴 유산은 ‘착하게 살아라’는 가훈이 전부.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돌아가신 스승이 남긴 유언은 ‘정직하게 살아라’다. 이 두 가지 무기를 갖고 거친 사회를 살아가기는 도대체가 불가능했다. 이제 난 세상을 버렸지만 이제 중학생인 외동딸이 걱정이다. 아 참 세상이 날 버렸나. 헷갈림. 가훈을 바꿔야겠다. 사기꾼인 건축주가 날 사기꾼이라고 고소하니까 사기꾼 형사가 날 사기꾼이라고 구속시키는 이 거지같은 나라. 정직한 시공을 지시하니까 조폭들이 죽이겠다고 담비고. 지인들은 날 이용하기 바쁘고. 이런 시련을 내 딸이 또 겪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금만 착하게 살아라’나 ‘조금만 정직하게 살아라’로 고칠까. 그럼 혼날 것 같은디.

쪽박 찬 난 가족과 함께 열 받아 전국투어에 들어갔다. 불국사 앞 잔디밭에 도사가 앉아 있다. 점이나 보자. 아니 도사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거죠. 당신 집엔 샘물이 솟아. 그래도 계속 퍼줘야되네. 마누라가 들이댄다. 아니 도사님 우리 남편이 얼마나 많이 퍼 줬는데 또 퍼주라는 거예요. 당신이 흔쾌히 안 퍼줬잖아. 그래 남편이 되는 일이 없는 거야. 같이 퍼줘야 돼. 부창부수(夫唱婦隨)니라. 아님 썩어. 음. 정말 곳곳에 센 사람들 많다. 대한민국 좋은 나라. 알겠습니다. 그래 난 없는 살림에 지금도 열심히 퍼준다. 다 가져가라. 비우니 몸은 고달프지만 맘은 편하다.

택시하면서 틈틈이 쓴 글들을 모아 책을 하나 내면서 건축가 김원 선생이 즐겨 사용하는 명구를 책제목으로 사용했다. 이른바 ‘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다. 좋은 건축은 향기가 없고 좋은 글도 향기가 없다. 뭐 이런 뜻이다. 이걸 가훈으로 쓸까. ‘좋은 인생은 향기가 없다.’ 이걸 중학생인 내 딸이 알아들을까. 뒤늦게 김개천 교수에게 물어봤다. 근디 도대체 ‘眞水無香’은 누가 한 말입니까. 노자요. 그래 난 <사유하는 도덕경>(김형효 지음)을 들고 택시를 몰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손님이 없는 불경기라 독서량은 극대화됐다.

‘물은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염불하여 생을 얻으려 하나,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할 뿐이다.’ ‘탁한 세상을 청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러운 것을 배척하고 지우려고 싸우기보다 그 더러움에 의해 물들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음 다 있군. 오죽하면 20세기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도 1915년 일본으로 제국호텔 디자인을 위해 건너가면서 <도덕경>을 들고 간다. ‘건물의 실체는 사방의 벽과 지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둘러싼 주거공간에 있다’ 도대체 모르는 게 없군. 2500년 전에 이런 책을 냈다고나. 중국. 무서운 나라다. 조심하자. 학창시절 읽었던 구절들인데 당시는 무식해서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스승의 강요로 들고 다니긴 했다. 폼으로. 모진 세파를 겪고나서야 노자 선생의 가르침이! 가슴에 와 닿으니.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고. 나 원 참.

김개천 교수가 설계한 만해마을을 방문했다가 김 교수로부터 한지를 한 장 선물 받았다. 그 종이 위에는 ‘轉大法輪’이라고 써 있었다. 그냥 집에다 붙여 놨다. 딸이 물어본다. 아빠 전대법륜이 뭔 뜻이야. 퍼뜩 정신이 든다. 아니 김원 선생님 전대법륜이 뭔 뜻이에요. ‘거대한 법의 수레바퀴가 돌아간다.’ 아빠 뭔 뜻이래. 까불지 말래. 정말 세상에는 지뢰밭 투성이다. 너무 센 사람이 많다.

아니 김원 선생님 <도덕경>을 보니까 세상에는 바른 맨 반, 나쁜 맨 반인데 나쁜 맨들과 싸우지 말고 피해 다니라고 하네요. 근디 우리나라는 나쁜 맨이 70%쯤 되는거 아니에요. 아니 아마 한 90%쯤 될 걸. 이걸 어떻게 피해다니냐. 가족을 불러 모았다. 야, 오늘부터 가훈을 바꾼다. ‘빛도 먼지가 없으면 빛의 효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먼지도 빛의 반사를 받으면 밝음을 비쳐준다’. 아빠 뭔 가훈이 이렇게 길어. 그래요. 화영이 아빠. 가훈이 뭔 뜻인진 알아야 따라가든 말든 할 거 아니에요. 좋다. 쉬운 걸로 하자. ‘까불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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