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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3 21:50 수정 : 2006.03.24 14:31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실벵 다르니·마튜 르 루 지음, 민병숙 옮김
마고북스 펴냄, 1만2000원

무담보 소액신용대출제 창안한 유누스에 감명
두 프랑스 젊은이 ‘지구상 100명 유누스찾기’ 내기
무료치료 병원·생태보호 벌목법·윤리기업 펀드…
몽상이 아니라 대안기업가들이 만든 현실
‘한국판 유누스’ 없었나 못찾았나?

미국 사람 개리 해시버그는 모처럼 자녀들과 여행을 떠났다가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부모 마음엔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었지만 집 밖을 나서자 그게 불가능했다. 어디를 가나 마주치게 되는 식당은 온통 맥도날드, 아니면 피자헛이었다. 패스트푸드에 볼모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그는 분개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세계 모든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그 다음부터 해시버그는 평범에서 벗어나 ‘비범’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해시버그는 스스로 물었다. 패스트푸드는 꼭 화학물질 덩어리여야만 하는가? 당연히 그런 법은 없었다. 그러면 제대로 된 패스트푸드, 영양가 높은 패스트푸드를 만들면 되지 않는가. 해시버그는 정말 그런 패스트푸드를 만들었다. ‘최초의 바이오푸드 레스토랑’, ‘오 내츄럴’(O’ Naturals)를. 2002년, 해시버그 나이 쉰살일 때였다.

‘건강한 맥도널드’ 대박 터지다

해시버그는 200만달러(우리돈 20억원 가량)을 투자해 식당 5곳을 열었다. 전채요리부터 후식까지 모두 유기농 메뉴만 팔기로 했다. 환경호르몬 없는 육류만 쓰고, 유기농빵에 소다수까지 유기농소다수로 갖췄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해시버그가 낸 식당들은 1년 매출액이 100만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맥도날드의 점포당 매출액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깨끗하게 성공한 것이다.

해시버그는 진정한 상식으로 불완전한 상식을 극복해냈다. 현대인들의 먹거리가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식품을 제공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나온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을 지배하는 고정관념이 생산자가 이 명제를 따르는 것을 가로막는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기쁨 대신 건강을 선택하는 사람은 금욕주의적 종교신자들밖에 없다”는 상식이 걸림돌인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지속가능한 해결방안’은 ‘바이오’란 단어에 있었다. 바이오는 가장 좋은 뜻을 가진 단어였고, 해시버그는 믿을 만한 대안으로 이를 증명한 것이다.

모든 것을 쥐어짜 소모하면서 환경을 망치는 지금의 경제시스템을 극복하는 길이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러나 동시에 지속가능한 방식을 따르려면 현실을 무시할 수 밖에 없고, 공공적으로는 옳아도 경제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해 보이는 해결책들이 ‘세상 돌아가는 물정 모르는 이상론’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개리 해시버그처럼 실제 대안을 입증해보이는 이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무하마드 유누스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추구하는 애머리 로빈스가 운영하는 에너지연구소 ‘로키마운틴연구소’의 모습. 이 건물은 태양열 등을 이용해 에너지 소비를 일반 건물보다 10배 이상 절약해 1년 내내 난방시스템이나 실내공기조절장치를 가동하지 않는다. 애머리 로빈스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략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자문해 많은 성과를 올렸다.
방글라데시의 경제학 교수였던 유누스는 무담보 소액신용대출제도를 창안해 세계 최초의 빈민은행인 그라민은행을 설립했다. 극빈자들이 살아갈 수 있게 기존의 신용기준에 관계없이 대출을 해주는 실험이었는데, 예상을 깨고 상환율은 일반 은행보다도 높았고, 은행은 매년 이익을 냈다. 이 은행 덕분에 수많은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이 유누스의 이야기가 두 프랑스 젊은이를 사로잡았다. 이들 두 젊은이는 유누스처럼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시위를 주동하는 식으로 일하는 대신 진짜로 변화를 구체화하거나 유도해내는 이들을 ‘대안기업가’라 이름붙였다. 그리고 내기를 걸었다. 지구상에 100명의 유누스가 존재하느냐는 내기였다. 이들은 존재한다는 쪽에 걸고, 1년 동안 지구를 한바퀴돌아 80명의 유누스를 만나는 여행에 나섰다. 나흘에 한 명 꼴로 만나야 가능한 목표였다. 이름하여 ‘80인을 찾아 떠난 세계일주’. 그리고 이들의 여행은 성공했다. 80명의 유누스를 소개하는 이 책이 그 증거다. 다만 ‘대한민국판 유누스’가 책에 없는 점은 아쉽다. 없었던 것일까, 못찾은 것일까.

지속 가능한 것이 가장 경제적

이들이 만난 대안기업가들은 결코 몽상가들이 아니다. 오히려 훨씬 더 현실적이고, 훨씬 더 경제적 가치에 냉철하다. 그래서 가장 지속가능한 것이 가장 경제적임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해낸 성공을 보면 꿈처럼 보일 정도다. 병원 수익으로 환자 가운데 3분의 2는 무료로 치로해주면서 인공보조장치 등 의료기구는 통상가의 절반도 안되는 값을 공급하는 병원? 수천헥타르의 숲을 개발해 목재를 공급하면서도 생태계를 위협하지 않는 법? 임금이 싼 나라로 공장을 옮기지 않고 자국에 머물면서 동종 산업 평균 급여의 최소 두배 이상의 월급을 주는데도 티셔츠 시장 선두에 오른 기업?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병원과 홍콩의 수목재배기업 시노 포리스트, 미국의 ‘윤리적’ 티셔츠업체 아메리칸 어패럴이 이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이뤄낸 주인공들이다.

구호 아니라 구체적 실천이 바꾼다

책은 결국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아이디어’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만든다. 기업에 탁아시설을 갖추는 것이 여성노동자들의 육아부담을 줄여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음을 설득해낸 방글라데시의 수라이야 학, 미국 최초의 자동차 나눠타기 회사 ‘플렉스 카’를 설립한 닐 피터슨, 공장에 잔디 지붕을 씌워 새들이 서식하게 하는 동시에 공장에 절연효과를 살린 생태디자인 건축가 윌리엄 맥도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윤리경영 기업에만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어 고수익을 올린 에이미 도미니…. 그리고 연간 15억개의 연필을 ‘지속가능한 재료’로 만드는 유명 필기구 업체 파버 카스텔, 인도의 여성운동가 반다나 시바나 생태운동의 세계적 지도자 레스터 브라운같은 저명인사들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의식을 갖고 사회참여를 하는 몇몇 사람들의 작은 단체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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