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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 소송의 11차 공판에서 증언대에 나선 피카르 중령이 펠리외 장군이 방금 폭로한 물증은 허위라는 증언을 하고 있다. <인권 정의 진실의 이름으로 다시 읽는 드레퓌스 사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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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는 무죄입니다
군부 출세욕·행정부 침묵·광기 퍼뜨린 언론이
진실의 싹을 자르고 음모를 공모했습니다
결정적 증거에도 오류를 인정안함이 과오요
프랑스가 진실 묻더라도 독일이 먼저 밝힐 것입니다”
거대한 벽 맞선 졸라
고전 다시읽기/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1.
1894년 9월말, 뒷날 '명세서'라 이름붙은, 독일대사관에서 훔친 익명의 편지 한 장이 프랑스 군정보부 손에 들어왔다. 군 기밀사항을 독일에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긴 편지였다. 이미 한 해전 ‘불한당 D' 편지로 긴장해 있던 참모본부는 군에 암약하는 간첩이 있다고 판단, 즉각 범인 색출에 나섰다. 범인은 참모본부의 사정을 잘 아는 인물로 결론 났다. 명세서 내용에 참모본부에서 극비리에 취해진 대포작동법 시안을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있고, “새로운 작전이 나오면 몇가지 변경될 것”이라는 문구가 있었기에 그러했다. 명세서와 유사한 필체를 지닌 인물을 조사했고, 마침내 유태계 장교인 드레퓌스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신속한 군 당국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드레퓌스가 범인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논란이 되었던, 명세서와 필체가 유사하다는 것말고는 내세울만한 증거가 없었다. 일부 언론은 그가 유태인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간첩설을 옹호했다. “드레퓌스의 도덕성, 부유한 환경, 범죄동기의 부재, 끝없는 무죄의 외침”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속임수와 음모, 위증으로 범벅이 된 재판을 통해 드레퓌스는 유죄가 인정되고 치욕적인 군적 박탈식을 겪어야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조국을 배신한 유태인을 처단했으니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조제프 레나크의 말대로 “프랑스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던 페이지 위에 정의로운 사람들은 ‘다음 호에 계속’이라고 써놓았다.”
결정적 반전은 이른바 ‘파란 엽서’로 일어났다. 독일 무관이 프랑스 장교와 거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암시된 이 엽서로 에스테라지라는 인물이 부각된다. 피카르 중령은 명세서와 에스테라지의 필체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 과정에서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신하게 된다. 피카르는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고 배신자를 세상에 제대로 알리려 했다. 그러나 군부의 핵심층은 이를 반기지 않았다. 그를 튀니지로 좌천시킴으로써 무엇을 원하는지 명백히 밝혔다. 권력자들은 갓 솟아난 진실의 싹을 무참히 잘라냈지만, 양심에 자리잡은 뿌리줄기만큼은 뽑아내지 못했다. 이제 거짓에 맞서는 정의로운 인물들의 연대가 이루어진다. 그 대열에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고 외친 에밀 졸라가 있었다.
2.
드레퓌스사건을 둘러싼 당시의 분위기는 “광기, 어리석음, 기괴한 상상력, 비열한 경찰 근성, 종교재판식의 매도, 전제적인 폭압”이었다. 이성과 합리, 그리고 양심이 들어설 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졸라는 바로 이 거대한 벽에 맞섰고, 이를 부추긴 권력자들을 당당하게 고발했다. “나라가 이토록 심각한 위기에 빠진 것, 그것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범죄자들을 보호하려는 권력자들, 진실의 빛을 막을 수 있으리라 여기며 모든 것을 거부한 권력자들의 과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암흑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권력자들은 막후에서 온갖 음모를 다 꾸몄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처한 끔찍한 혼란의 유일한 책임자는 바로 그들, 권력자들입니다.” 진실의 발걸음 계속 전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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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쪽으로 된 <나는 고발한다>의 원고 첫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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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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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책세상 펴냄 드레퓌스 사건을 주제로 졸라가 신문에 기고하거나 팸플릿으로 발표한 시론 11편을 우리말로 옮겼다. 인권 정의 진실의 이름으로 다시 읽는 드레퓌스 사건 아르망 이스라엘 지음, 이은진 옮김, 자인 펴냄 드레퓌스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50자 서평
◇ 김낙현(한국외국어대 불어과 4학년) “손이 타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횃불을 놓아버릴 수 없다는 지드의 말처럼, 양심을 위해 수사학을 사용한 가장 위대한 사례. 왜 이제껏 완역이 되지 않았을까?” ◇ 이달승 영남대학교 조형대학 겸임교수 “글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섣부른 판단이 되려 한다. 글이 왜 증언에 멈추어야 하는가를 <나는 고발한다>는 기록하고 있다.” ◇ 박묘원(책세상 편집부) “진실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위대한 개인, 졸라. 그의 목소리는 사건 당시와 오늘날의 사이에 놓인 백여 년의 시간을 충분히 뛰어넘는다.” ▽ 다음주 이후 고전 <노자>, <힌두 스와라지>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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