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30 17:37
수정 : 2006.03.31 16:40
역사로 보는 한주
1982년 4월2일 시작돼 두달 남짓 계속된 영국-아르헨티나간 ‘포클랜드 전쟁’은 서구 제국주의의 부정적 유산들과 무관하지 않지만, 복잡한 두 나라 국내 정치사정이 촉발시킨 좀 뜬금없는 전쟁이었다. 남미 대륙 끝부분에서 동쪽으로 약 500㎞ 떨어진 대서양상의 200여개 섬들로 구성된 총면적 1만2000㎢의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을 둘러싼 양국간 전쟁은 결국 영국의 승리로 끝나긴 했지만, 그 전쟁과 묶인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프랑스제 최첨단 미사일 ‘엑조세’였다.
엑조세의 위력은 영국 조야를 경악시켰고 취약한 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무기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촉발했다. 원래 ‘나는 물고기’라는 뜻의 프랑스어 엑조세는 포클랜드 전쟁 이후 ‘괴멸적 타격’을 뜻하는 말로 전용돼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1979년부터 실전배치된 엑조세는 670㎏ 중량에 탄두무게 165㎏, 길이 4.7m, 날개폭 1.1m에 사정거리 70㎞의 중거리 크루즈(순항) 미사일로, 초속 315m의 속도로 수면 2m 위의 초저공을 쏜살같이 날아가는 함정공격용 미사일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82년 5월4일 엑조세 1기를 장착한 아르헨티나 공군 전투기인 프랑스제 수퍼 에탕다르가 영국 구축함 셰필드를 공격했다. 길이 125m, 폭 14.3m에 30노트의 속도로 달리는 4820t짜리 셰필드는 그날 엑조세 한방으로 운명을 다했다. 에탕다르는 30-50㎞ 떨어진 곳에서 엑조세를 발사했다. 초저공 초스피드 비행으로 레이더 감시도 따돌린 엑조세는 셰필드의 중앙부에 명중했다. 탄두는 불발이었으나 초스피드 충돌에 따른 충격과 남아있던 로켓추진연료 폭발로 셰필드의 발전시설과 소방시설이 먼저 파괴되고 뒤이어 불이 번져 셰필드는 결국 대서양 바닥에 가라앉고 말았다. 수송선 어틀랜틱 컨베이어도 엑조세 공격으로 침몰했고, 글래모건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당시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영국 지지를 분명히 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후의에 감사한다”고 밝혔고 영국 국방부도 프랑스를 최고의 맹방이라 상찬했으나, 프랑스제 무기 수출을 막기 위해 정보기관을 총동원하고 미국 정보기관 도움까지 받는 등 전전긍긍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당시 프랑스는 전투기와 미사일을 판 아르헨티나에 무기적응 지원팀을 파견해 놓고 있었다. 대처는 엑조세를 무용지물로 만들 비밀코드를 내놓지 않으면 핵잠수함을 동원해 핵무기 공격도 불사하겠다고 프랑스쪽 관계자들을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제 첨단 무기가 영국 무기장사를 망쳐 놓을 수도 있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 대규모 한국 국방사업계획에서 프랑스제나 러시아제 무기·장비 구입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미국이 왜 그토록 예민하게 굴겠는가.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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