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30 18:02
수정 : 2006.03.3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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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출판사 ‘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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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이책
불과 200년 전까지만 경제성장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비롯된 것일까.
<부의 탄생>(The Birth of plenty)이라는 책명이 말해주듯, 이 책은 현존하는 선진 부국(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의 탄생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오늘의 선진 부국이 있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그 요인을 밝혀내고자 저술되었다.
베스트셀러 <현명한 자산 분배자>(The Intelligent Asset Allocator)를 쓴 미국의 유명 경제 칼럼리스트인 저자 윌리엄 번스타인은 우선 오늘날 부국이 탄생하게 된 시점에 주목한다.
1820년, 덴마크 과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가 전선을 통해 흐르는 전류가 나침반의 바늘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기의 흐름을 측정하는 길이 열린 것으로 과학사의 한순간을 장식한 해였다.
경제사적으로 볼 때 1820년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경제사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1000년경까지 거의 제로 상태를 유지하던 경제성장은 그 후 500년간 미미한 증가세를 보이다가 갑자기 1820년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왜 경제성장은 1820년이라는 특정 시점에 유럽과 미국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일어났는가. 도대체 1820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저자는 번영에 필요한 네 가지 요인으로 재산권의 보장, 과학적 합리주의, 활기 있는 자본시장, 수송ㆍ통신의 발달을 제시하면서 이 시기에 유럽과 미국에 이들 요소가 갖춰지기 시작했으며, 이로써 오늘날의 부국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국부 탄생 및 축적의 네 가지 요소 중 하나만 충족되지 않아도 부는 쌓이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본 저자는 ‘재산권의 보장’의 열쇠를 독점체제로 인한 인센티브의 박탈이 없고 독점가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자의적으로 빼앗기지 않는 것으로 폭넓게 해석하고, 과학적 합리주의의 열쇠란 현대사회에서 포퓰리즘 또는 다른 어떤 정치적 선동에 현혹되지 않는 지적 건강성을 의미하며, ‘활기 있는 자본시장’은 기업들이 합리적 경영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은 현존하는 선진 부국의 탄생의 비밀을 밝히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이들 국가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선진국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가도 밝혀준다. 아울러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을 만큼 강력한 무력과 부를 가지고 있던 이슬람제국이나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 1820년 대 이전 강대국들이 왜 현존하는 선진 부국에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강대국 반열에서 뒷걸음치게 되었는가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고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직접적ㆍ압축적으로 처세의 요령을 주입해 주는 자기계발서나 현재의 추세를 바탕삼고 있는 미래 예측서들 대부분이 속도감있게 술술 읽히는 데 비해 역사에 바탕을 둔 이 책은 읽는 동안 자주 머무르게 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500쪽이 넘는 분량에 시간적으로 중세에서 현대까지 포괄한데다가 정치ㆍ경제ㆍ과학기술ㆍ법률 등의 분야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결코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다. 세계 경제사에 대한 저자의 박학다식과 재기 넘치는 논리를 즐길 수 있으며, 냉혹한 국가경쟁 속에서 한국이 선진 국가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천명애/시아출판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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