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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30 18:37 수정 : 2006.03.31 16:40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 말하고 김진송 지음. 현문서가 펴냄. 1만2800원

‘한열이를 살려내라’ 걸개 기억하오? 나 최병수가 그렸소
중학교 중퇴해서 미술의 ‘미’자도 몰랐던 내가…
‘정릉벽화’ 돕는다고 사다리 만들다 잡혀갔는데
형사가 자꾸 화가라 우겨 졸지에 화가가 됐지
민주화·반전·환경…이 책이 이젠

87년 6월 항쟁의 상징인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80년대를 거리에서 보낸 3,40대들은 거개가 그 그림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 작가는 누구? 바로 ‘최병수’다.

걸개그림은 80년대의 한국미술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르다. 민주화의 현장이나 노동, 반전, 환경, 여성운동 등 우리 사회의 긴급한 현안과 관련된 곳에는 항상 걸개그림이 있었다. 많은 미술가들이 참여했지만 그 선봉에는 항상 최병수가 있었다. 메이데이 100주년행사 때 선을 보였던 <노동해방도>와 <장산곶매>는 그의 대표작품들이다. 그의 왕성한 활동의 원천은 그의 녹록치 않은 삶에서 우러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흡하게나마 한 구석에서 붓을 잡고 있었던 필자는 그의 거침없는 행동에 곧잘 주눅이 들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그가 오늘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가 말하고 미술 비평가이자 목수인 김진송이 글을 지었다. 최병수는 이 책에서 자신이 걸어 온 삶의 역정을 당당하게 세상에 드러내었다.

책의 제목은 두 가지 뉘앙스를 담은 듯하다. 목수인 김진송이 화가인 최병수에게 말을 걸어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끌어냈다고도 할 수 있겠고, 나무를 깎던 노동자 목수 최병수가 화가 최병수에게, 또는 화가 최병수가 목수 최병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후자의 편이 더 합당하지 않나 싶다.

최병수는 이 책에서 가난한 집의 팔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신문팔이, 중국집 배달원, 전기공, 웨이터, 막노동꾼, 배관공, 목수 등을 전전하며 간난신고의 삶을 보낸 후, 졸지에 화가가 된 이야기를 독백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가 화가가 된 후, 미술운동과 환경운동을 하면서 겪고 느낀 것들을 쏟아낸다. 이 대목부터는 글쓴이의 짧은 질문에 그가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는 86년 이후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20년을 큰 목소리로, 때로는 반성의 태도로 뒤돌아본다. 부끄러운 기억조차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곳에 이르고도 그는 태연히 그 고통을 말하고 있다. 문장의 행간 행간에서 걸걸하고 카랑카랑한 최병수 특유의 목소리와 제스처가 느껴져 미소 짓게 한다.

노동자들이 힘차게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걸개그림 <노동해방도>(1987년 작)가 최병수씨 등의 공동작업으로 완성되고 있다.
신문팔이·배관공·목수 전전


“목수보다는 화가라고 말하는 게 더 그럴듯하고 기분 좋은 거 아니냐고? 그런 건 없었어. 나도 세상 물 먹은 사람인데 그런 게 별거 아니라는 건 알지. 그래서 둘이서 30분을 버티고 앉아 있었어. 그 형사도 이상한 고집을 피우데. 나를 화가로 적지 못하면 자기도 못 나가고 나도 못 나간다는 거지. 저쪽에서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그래서 어차피 별것 아니니까 ‘그럼 마음대로 하시오’ 그랬더니 형사가 조서에 ‘화가’이렇게 찍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농담을 섞어서 나보고 관제화가라고들 했지. 나를 화가로 만든 건 경찰서야. 난 정부가 인정한 공식화가라고.”

최병수가 86년 화가로 등단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중학2년 중퇴의 학력인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화가’가 되었다. 미대에 다니던 친구의 소개로 민중벽화를 그리기 위한 발판을 만드는 일을 거들어주다가 그는 졸지에 경찰서에 구치되었다. 이른바 ‘정릉벽화사건’에 연루되었던 것이다. 그의 구속여건을 고민하던 형사는 그의 직업을 목수가 아닌 ‘화가’로 등재시켰고, 그는 그 후 ‘진짜 화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80년대적 상황의 한복판에서 그는 그렇게 억지로 화가가 되었지만 그의 진면목은 그 이후에 드러난다. 그는 90년대 초부터 지구 환경문제에 본격적으로 참여한다. 지구의 날 행사장은 물론이거니와 새만금 해창 갯벌, 북한산 관통도로 사패산 현장 등에는 어김없이 그의 작품과 그가 있었다. 또 브라질 리우,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등의 전 세계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또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반전평화팀 활동가로서 이라크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병을 얻고 쓰러졌다. 세상과 세월이 그의 건강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2/3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병실에 있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는 퇴원 후 아픈 몸을 이끌고 매향리로, 평택의 대추리로 달려가 미군기지 확대 반대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지난해엔 교통사고마저 당했다. 비로소 그는 자신이 환자임을 깨닫고 대외활동을 자제하면서 현재는 여수에 거처를 마련하고 요양 중이다.

1986년 ‘정릉벽화 사건’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선 최병수(오른쪽)는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로 이름을 얻게 된다. 이후 민주화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으며 지금도 아픈 몸을 이끌고 매향리, 대추리, 새만금 등으로 달려가는 실천적 삶을 살고 있다.
최병수는 이 책이 자신의 졸업장 같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동안 걸어왔던 길의 중간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 맞는 말이지 싶다. 불행하게도 세상이 결코 그를 졸업시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를 15년간 곁에서 지켜보았다는 글쓴이는 강화도로, 대추리로, 마석으로, 여수로, 근 1년간을 그의 동선을 따라 다니면서 그의 말을 기록했다. 그가 최병수를 만난 것은 미술잡지의 기자로 있을 때였다.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실천적 삶을 살고 있는 최병수를 볼 때마다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위암·교통사고에도 실천적 삶

그는 이 책에서 최병수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최병수를 정리해보고 있다. 최병수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착잡한 시선과 애증이 섞여 있기도 하지만 김진송은 최병수가 이시대의 진정한 작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그는 최병수로 하여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최병수의 삶을 통해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되새겨 볼 수 있다. 그의 삶과 그의 작품은 ‘사회적인 문제들’ 과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문제는 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해결과제이기도 하다.

일상의 안락함에 빠져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고자 하는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남궁산/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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