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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30 20:08 수정 : 2006.03.31 16:42

원더풀 아메리카
F. L. 알렌 지음. 박진빈 옮김. 앨피 펴냄. 1만9800원

1차 대전 이후~대공황 11년간의 미국 미시사
파업자·채플린은 ‘빨갱이’로…흑인은 ‘문제아’로
백악관은 사기꾼들의 놀이터 되기도
29년 10월24일 주가 폭락 ‘광란 끝 비극 시작’

몸으로 시대를 살아낸 사람에게 어느 순간, 어느 사건 치고 중요하지 않은 게 있을까. 유행, 패션 따위를 기록하면 미시사가 되고 동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건드리면 생활사가 된다. 그것이 묵으면 자체로 역사가 되지 않겠는가.

1천여 사진·그림 한국판 편집 덕

<원더풀 아메리카>(앨피 펴냄)는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1929년 11월 주식시장 대폭락까지 전후 11년동안의 미국 이면사 혹은 미시사다. 1931년에 쓴 것이니 2년 전의 사실까지 아우른다. 서술하는 시기와 상거가 짧은 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근시안적 해석과 판단의 오류가 드러날 터이나 생생하고 정확한 기술이 충분히 덮어줄 터이다. 당대인으로서 체험과 목격담 외에 소설가의 미세안과 역사학자의 충실성이 녹아있을 터다. 지은이가 이끄는대로 ‘미국 역사상 특별한 시대’로 들어가 보면 거리의 소음과 북적대는 인파와 도시의 냄새가 생생하다. 곁들인 1천여 개의 관련 사진과 그림은 순전히 한국판 편집자의 부지런함 덕이다.

적색공포=전쟁이 끝났지만 윌슨은 세계평화를 위해 유럽으로 가버렸고 노동자들은 잊혀졌다. 고물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노출된 노동자의 파업이 번졌다. 전쟁을 막 빠져나온 기업가들에게 노동자들은 방해자였다. 1919년 봄 상원의원, 법무장관 집 폭발 사건은 탄압에 불을 당겼다. 경영자들은 철강, 광산 수십만 파업자를 볼셰비키로 낙인찍었고 당국은 전시 치안법을 적용했다. 1920년 공산주의자 지부 모임을 덮쳐 6천여명을 체포했다. <더 네이션> 등 잡지는 ‘혁명적’, 스콧 니어링, 찰리 채플린 등은 공산주의자로 분류됐다. 교과서를 재조사하고 대학은 헌법 존경을 가르치는 과목을 필수로 삼았다. 이러한 불관용주의는 흑인, 유대인, 가톨릭교도에 대한 반감으로 번졌다. 그해 여름 시카고에서는 흑인소년의 익사를 싸고 소요가 발생해 38명이 죽고 537명이 다쳤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유대민족이 세계정복을 꾀하고 있으며 미국이 안고 있는 고통의 근원이다”라고 썼다. KKK단의 출현도 같은 맥락이다.

하딩과 스캔들=윌슨의 고매함에 싫증난 유권자들은 가장 대통령스럽고 친절한 하딩을 뽑았다. 그러나 웬걸. 그는 끔찍히도 무식했고 사람 보는 눈도 없었다. 하딩은 미복으로 갱과 그 친구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술을 마시고 포커판을 벌였다. 그는 자기와 함께 온 오하이오 갱단 또는 사기꾼에게 관직을 나눠주었다. 하딩이 수년동안 도리아식 가짜현관 구실을 하는 동안 그 뒤에서 오하이오의 로비스트와 매수자들이 말아먹었다. 대표가 법무장관 해리 도어티와 내무장관 앨버트 폴. 내무장관이란 자는 해군 소유의 유전을 민간업자한테 불법으로 임대하여 36만달러를 챙겼는데 더 캐니 몇이서 공모해 ‘대륙통상주식회사’라는 가공의 회사를 차려 석유판매 대금 300만달러를 쓱싹했다. 법무장관이란 자는 하수인을 시켜 주류밀매업자한테 700만달러의 뇌물을 챙겼다. 이밖에 재향군인회, 외국인재산관리국도 뇌물과 횡령이 판쳤다. 그가 죽었을 때 순진한 국민들은 상가철시, 추모예배에 조기까지 달았다. 신문들은 스캔들을 파헤치는 사람들을 험담꾼, 흙탕물 뿌리는 사람, 인격암살자라 불렀다.


1920년대 미국은 1, 2차 세계대전의 중간 20년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시기. 전쟁 직후 세계질서와 사회체제가 재편되는 가운데 혼돈의 연속이었다. 전쟁 직후 불균형한 산업구조로 인해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시달렸고 이는 대규모 파업으로 이어졌다. 고용주-정부는 짝자꿍으로 노동자와 진보주의자를 빨갱이로 몰아가면서 미국사회 전체는 적색공포에 휩싸였다. 앨피 제공
금주법이 알 카포네에겐 ‘황금알’

알코올과 알 카포네=금주법인 볼스테드법이 얼결에 통과되었다. 사람들은 술없는 천년왕국을 꿈꿨지만 미국의 해안선과 국경선은 밀수업자들한테 3만킬로미터의 초대장과 같았다. 초보 화학, 초보 심리학도 무시한 법은 누구도 챙기지 않았고 먹히지도 않았다. 거래성사를 위해 임원들은 주머니에 진을 챙겨 나가고 세일즈맨들은 구매자들한테 담배 대신 술을 나눠주었다. 하지만 법 같지 않은 법이 갱단한테는 엄청난 돈벌이 수단. 조니 토리오의 부관으로 발탁된 나폴리 출신의 알폰소 카포네는 3년만에 부하 700명을 거느리게 됐다. 권총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그들은 라이벌 갱단 디온 오바니안 쪽과 대낮 혈투를 벌였다. 요새처럼 무장한 차를 탄 카포네는 앞뒤로 부하를 가득 태운 차를 호위로 세웠고 극장에 갈 때는 예복 차림의 보디가드 18명을 대동했다. 마이애미의 멋진 저택에서 한번에 75명의 손님을 접대했으며 시카고 중심가 호텔의 본부에서 고위 정치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때 그의 나이는 서른 두 살. 나폴레옹는 그 나이에 무얼 했더라?

팜비치땅 3년만에 17배 폭등

가자, 플로리다로=1925년 여름과 가을. 준설기와 증기삽들이 맹그로브 숲과 비스케인 만의 모래톱을 도시로 바꾸고 있었다. 어떤 이는 만조때는 사라지는 섬 두 개를 사들여 모래를 퍼올려 쌓은 뒤 길과 호텔, 집들을 지었다. 사람들에게 땅을 판 첫날 3백만달러의 매상을 올렸는데 단 한 삽의 모래를 퍼올리지도 않은 상태였다. 투자자들은 ‘멜버른 가든스’를 찾다가 쓰레기장을 거쳐 목적지를 5킬로미터 앞두고 진흙길에 빠져버려도 그 땅을 샀다. 붐이 일기 전 24만달러짜리 팜비치 땅이 23년에 80만, 24년 150만, 25년 400만 달러가 되었다. 잔금 지불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첫 잔금일이 되기 전에 두둑한 이윤을 남기고 가계약서를 다른 이한테 넘겼다. 신문광고면은 넘쳐 25년 어느 여름 <마이애미 데일리 뉴스>는 1부당 504면을 인쇄했다. 붕괴는 26년 봄과 여름에 시작되었다. 가계약서를 넘기는 데 실패한 사람들이 잔금을 못치러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9월에는 허리케인이 덮쳐 사망 400명, 부상자 6300명 5만 이재민을 냈다. 서류상의 이익을 통해 쌓인 수백만 달러와 돈은 대부분 사라졌고 개발에 들어간 수백만 달러는 없어졌다. 투기열풍은 월가로 자리를 옮겼다.

후끈, 와장창=27년 하반기부터 경기침체가 나타나고 28년 2월 실업문제가 심각한데도 주가는 올랐다. 봄부터 증시는 후끈 달아올랐다. 투기열풍은 온나라를 감염시켰다. 3일 94달러50센트였던 라디오주가 13일에는 160달러까지 솟구쳤다. 3일 120만주던 거래량이 27일에는 479만주였다.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식광들은 경제이론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11월 후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증권시장은 다시 광란상태가 되었다 ‘4년 더 번영’이라는 것. 29년에는 잡화상, 전차운전사, 연관공, 재봉사, 밀조주점 급사까지 주식시장에 참여했다. 10월 24일 평소와 다름없던 날. 주가는 폭락했다. 29일 거래소는 혼돈 그 자체였다. 어느 곳에서나 흥청대다 빚더미에 오른 가정들이 눈에 띄었다. 은퇴해서 떵떵 살겠다던 투자가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신문들은 매일 우울한 자살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전후 10년은 끝에 이르렀다.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 후버의 최대 오류는 1928년에서 1932년까지의 임기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여성의 치마 길이가 주가와 더불어 길어졌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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