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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네이메헌 의과대학 교정에는 히포크라테스의 조각상이 없다. 대신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스클레피오스(왼쪽)와 히게이아(오른쪽)의 조각상이 건물 양쪽에 서 있다. 여기 유럽의철학회 본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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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봉사에 생 바치겠다” 선언해놓고
현실 속 의사들은 잇속 차리기 바빠
‘의학사상’ 제대로 소화 못한 탓
신화·역사·과학 어우러진 동·서양의학처럼
우리 의철학도 ‘인문학 수혈’ 받아야
의학속 사상/(24) 한국 의철학의 과제 우리나라의 모든 의과대학 교정에는 히포크라테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로 시작하는 유명한 선서가 새겨져 있다. 이 선서는 의사를 비롯한 모든 의료인의 행동을 규율하는 세계 공통의 규범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의사를 나무랄 때는 예외 없이 이 선서가 들먹여진다. 여기에 의술은 본질적으로 인술(仁術)이라는 동아시아 전통의 가치가 덧붙여진다. 의업은 본질적으로 신성하며 모든 의사가 이 가치에 봉사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과 의사들의 파업 투쟁, 한의사와 약사, 의사와 한의사간의 직역 다툼, 상업적 의료의 급속한 확산 등은 우리가 더 이상 2500년 전의 가치에 무조건적으로 헌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현실과 이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지나온 각 시대와 공간의 의학 속에 들어있는 사상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보편적 과학인 의학에 무슨 사상이 있겠냐고 되묻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천박성에 더 근본적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제 한번이라도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담긴 시대상을 진지하게 검토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선서가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이 무엇인지,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현실은 어떻게 다른지, 그것이 우리의 문화와 시대적 현실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가? 관례에 따라 조각상을 세우고 반성 없이 선서를 낭독하는 무미건조한 형식주의로는 절대로 이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 우리 의학이 인문학의 수혈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증인은 ‘신’
하지만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외국의 학자가 쓴 교과서로 역사와 윤리를 가르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서구인들의 경험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의학이 우리 의학의 주류가 된지 오래고 사회의 모든 부문이 서구화한 마당에 무슨 전통이 필요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싫든 좋든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공존하고 있고 갈수록 비정통 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반성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작업은 대체로 1) 의학의 역사 속에서 객체적 사실을 찾아내고(의학사), 2) 그 속에서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사유양식을 읽어내며(의학사상사), 3) 그것을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재해석하는(醫哲學) 단계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경우 서양의학과 한의학 모두가 이러한 반성의 대상이 되며 따라서 세 번째 단계인 의철학의 과제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짧은 글에서 이 과제를 수행할 수는 없으므로 먼저 동ㆍ서 의학의 사상적 전통을 간략히 되짚어보면서 우리 의철학의 과제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내가 방문했던 유럽의 의과대학에는 히포크라테스의 조각상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학의 남신 아스클레피오스와 위생의 여신 히게이아의 상이 건물 양쪽에 서 있을 뿐이었다. 첨단의 과학적 의학을 선도한다는 유럽의 의과대학이 미신을 타파하고 자연의학을 세운 히포크라테스 대신 허구와 상상으로 만들어진 신화를 내세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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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의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황제내경의 주인공 황제(黃帝)의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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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익/인제대 교수·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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