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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문화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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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예술동호회 우후죽순
표현 욕구 넘실대는 문화의 시대
문화공간의 패러다임 바뀌어야 한다
시민들의 연습하고 공연하고
감동 연출의 주역이 되는 곳
예술은 진정한 놀이로 삶을 위로하리
생활속의 문화사회학
‘시의회나 6천명의 배심원을 가진 법정에 참여하는 것처럼, 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시민활동의 일부였다. 매년 봄 축제에서는 비극작가들 사이에 경연이 벌어졌는데, 거기에 매년 12개의 새로운 연극이 오르고 180여명의 합창단 및 무용수들이 참여했다. (…) 매년 2천명 정도의 아테네 시민들이 대사를 외우고 서정시나 연극 합창의 가사를 읊거나 합창과 무용연습을 해야 했다. 이것은 최고의 미적 체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지적 훈련이었다.’ (루이스 멈포드 <역사 속의 도시> 중에서)
‘아테네’ 하면 철학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제자들과 토론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그것은 후기에 이르렀을 때의 상황이다. 문명비평가 멈포드가 밝히고 있듯이 초기의 아테네는 예술과 축제로 연일 떠들썩했고, 시민들은 스스로 그 강렬한 감동을 연출하는 주역으로 무대에 참여했다. 도시의 역동적인 문화는 가까이에서 관찰되고 경험되며 사람들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갱신되었다. 그들에게 공공성은 심미적인 활동으로 가시화되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교차 속에서 시민적 정체성이 창출된 것이다. 우리는 도시 공동체의 이데아를 그들에게서 어렴풋이 엿볼 수 있다.
한국의 도시 문화도 나름대로 풍성하다. 대도시에는 언제나 현란한 볼거리들이 넘쳐난다. 번화가의 경관은 상품의 진열대를 중심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한다. 최고의 뮤지컬들이 경연을 벌이는 서울은 이제 세계적인 문화 상품 시장이다. 그리고 지역마다 예술 회관, 구민 문화회관, 청소년 수련관, 문화원, 박물관 및 미술관, 백화점이나 할인점의 문화센터, 영화관 등의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하드웨어의 총량으로 보면 아주 부족한 편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의 문화생활에 만족하는 시민은 별로 없다. 주5일 근무 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권태를 호소한다. 왜 그럴까.
우선 수준 높은 공연물은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일부 문화센터에서는 그런 공연을 유치하여 저렴하게 관람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는 즐거움에는 한계가 있다. 자기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의미세계를 창출하는 희열이 예술의 심오한 매력이기 때문이다. 많은 축제들이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까닭도 일회성의 보여주기 이벤트 위주이기 때문이다. 참가 인원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문화행정, 객석이 꽉 들어차 있기만 하면 시설의 존립 이유를 더 이상 묻지 않는 풍토가 거기에 맞물려 있다. 또한 단체장들이 자신의 임기 내에 거대한 시설을 지으려는 야심이 문화의 내실을 훼손한다.
문화공간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인프라 확보의 단계를 지나 이제는 그 안에서 펼쳐질 시민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현재 전국에는 아마추어 음악단만 해도 1천개가 넘는다. 아카펠라 동호회 활동을 하는 직장인들, 늦은 나이에 밴드를 결성한 아줌마들, 동네에서 남성 합창단을 꾸리는 아버지들,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로 구성된 관현악단… 그들은 음악으로 삶의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학교 현장이나 청소년 센터에 찾아가 특별 수업을 꾸리기도 한다. 그런데 재정이 빈약하여 허름한 창고 같은 곳을 전전하며 연습하는 경우가 많다. 약간의 제도적인 지원만 이뤄진다면 탄탄하게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문화센터는 그러한 시민 에너지를 업그레이드하는 거점이 될 수 있다. 장르 별로 아마추어들의 자주적인 창작 활동을 북돋고 지원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공간의 구조와 배치가 달라져야 한다. 웬만한 공연물로는 객석을 메우기가 어려울 만큼 거대한 공연장의 크기를 줄이고, 그 대신 다양한 동아리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연습할 수 있는 방, 창작에 필요한 악기나 재료 등을 도구를 보관하는 공간, 예술에 관련하여 각종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자료실, 초보자들이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는 강습실 등이 대폭 확충되어야 한다. 문화센터나 예술회관은 소규모로 분산 배치되어 시민들이 스스로 문화의 생산자로 성장하는 배움의 요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문 예술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그들은 자신의 기량을 최대화하여 공연물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힘을 기울여 왔는데, 이제는 그 재능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는 쪽으로도 관심과 시간을 안배하는 것이 요구된다. 단순히 강습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프로와 아마추어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연출할 수도 있다. 그들은 그 지역의 고유한 풍토나 역사를 반영하는 콘텐츠로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지역 안팎의 다양한 문화 단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고, 문화센터는 그 네트워크의 고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평생학습 사회와 주5일 근무 시대에 삶의 질을 높여가는 작업은 이러한 인프라 위에서 원활하게 이뤄진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경남 밀양시의 연극촌은 예술인과 지자체 그리고 주민이 행복하게 만나는 모델로 여겨진다. 활동의 규모가 커지면서 공간이 더 필요했던 극단, 지역의 새로운 이미지를 찾고 있었던 지자체가 의기투합했고 거기에 주민들의 십시일반 후원과 자원봉사로 밀양시는 예술의 고장으로 탈바꿈했다. 폐교를 개조하여 극장과 연습실과 사무실 등을 만들었고, 그 학교 출신의 주민들은 연극의 단골 고객이자 비평가들이 되었다. 밀양시에 사는 어느 가족은 연극 캠프를 계기로 연극촌의 인기 배우들이 되었다. 또한 주말이 되면 타지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몰려오는데, 그들은 단지 관람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극 워크숍에도 참여한다. 예술은 자유로운 놀이감각으로 현실을 조감하면서 또 다른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환상 체험이다. 그 경지에서 우리는 지리멸렬한 일상의 번뇌를 뛰어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아름다움을 발효시킨다. 사사로운 굴레에서 잠시 풀려난 마음들이 공적 행복감을 빚어내며 매력적인 존재로 고양된다. 그러한 감동에 종종 머물러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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