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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의 역사
로제 샤르티에·굴리엘모 카발로 엮음, 이종상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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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부터 책의 장·절·목차·용어 찾기 구분 시작
르네상스 부흥은 ‘고전 재가공 전문가’ 덕분
18세기 독서혁명 일어 시민계급 처음으로 책 맘껏 향유
읽는 습관의 변화에 따른 시대상 조망
서양 문화의 태동기인 고대 희랍의 독서에서 20세기, 나아가 독서의 미래까지 자세하게 살펴보는 이 책, 목차만 봐도 배가 부르다.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전체 내용을 요령 있게 개괄하는 머리말만은 먼저 읽어두는 게 좋다. 머리말에 따르면 이 책의 목표는 이렇다. ‘독서는 역사에서 분리된 인류학상의 불변체는 아니다. 몇 가지 유형이 독서관행을 지배했으며, 몇 차례의 독서 혁명이 행동과 습관을 변화시켰다. 이 책은 그런 유형과 혁명을 조사·연구하여 그것들을 더 이해하고 싶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책의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고 책의 제1장 ‘고대기와 고전기의 그리스’를 펼쳐드는 순간 독자는 질려버릴지도 모른다. 고대 희랍에서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했는지, 문헌학 지식을 동원하여 깊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는다는 것이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실감해볼 필요가 있다. 고대 희랍인들은 씌어진 문장은 읽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완전해진다고 보았다. 읽는 행위 자체가 문장의 구성 요소였으며, 씌어진 것이 음성화되어 청중들의 귀에 들어감으로써 텍스트가 완성되었다.
중세 초기와 중기, 특히 스콜라학 시대에 들어와 교육에서 독서, 정확히 말하면 텍스트 강독이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텍스트가 장과 절로 구분되고 각 장에 제목이 붙고, 목차와 함께 용어 찾아보기 등이 생긴 것도 이 시대의 일이었다. 작품 전체를 읽지 않고서도 필요한 부분을 골라낼 수 있게 된 것도 12세기부터였으니, 필요한 정보의 소재를 확인하여 참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지식의 체계적인 갈무리가 가능해 진 셈이다.
중세 후기에 이르러 묵독이 확산되면서 독서의 프라이버시가 보증되고, 이에 따라 외설스런 삽화가 들어 있는 책이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개인의 묵독이 그 때까지 억압돼왔던 성적 공상을 표현하고 감상할 자유를 주었다는 것인데, 심지어 교회 달력에도 포옹하면서 도발적으로 애무하는 나체의 남녀가 그려져 있었다. 낭독되지 않는 자필 저술 관행도 중세 후기부터 널리 퍼졌으니, 이 때부터 사람들은 성적 체험이나 성애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중반 자유기고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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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격언 4천여개를 정리·해설한 에라스무스의 <격언집>은 16세기 초 유럽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림은 한스 홀바인 2세가 그린 에라스무스의 초상으로, 그가 손을 얹고 있는 책에는 ‘헤라클레스의 과업’, 곧 ‘위대한 업적’을 뜻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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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인문주의 부흥 시대에 고전이 어떻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는지 살펴보는 건 오늘날 출판업계에도 퍽 유용할 듯 하다. 당시 사람들은 ‘도와주는 이 없이 고전 텍스트의 강물 속에 텀벙 뛰어들지’ 않았다. 인문주의자라는 전문가가 나서서 ‘고전의 원문을 균질하고 보기 쉽고 재이용 가능한 금언과 지식으로 재가공하고 세분하여 상자에 채워 넣어 주었다.’ 이를 통해 16세기 학생들은 ‘고전 텍스트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었고, 성인이 되어 혼자 읽어야 할 때 텍스트를 어떻게 가공하면 좋을 지’ 배울 수 있었다.
18세기말 유럽에서 과연 독서 혁명이 일어났는가? 이 책에 따르면 그렇다. ‘시민계급은 처음으로 독서에 바치는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서적 구매력을 갖기에 이르렀다. 독서는 이제 해방의 기능을 갖게 되었으며, 생산적인 사회 에너지가 되었다. 독서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적인 시야를 넓혔다. 인쇄된 말이 시민문화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18세기 중반에 영리 목적의 대여 도서관과 비영리 독서 조합이 늘어나고, 자유기고가들이 나타나 시장 원리에 따라 글을 생산했으며, 계급 경계를 뛰어 넘는 독서 취향이 나타났으니, 이를테면 공포 소설이 법원 고급 관리에게도 양복점 견습공에게도 읽혔다. 1796년 성직자 요한 루돌프 고틀리프는 독서 전염병의 주요 증상들을 이렇게 기록했다.
“책 읽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책을 손에 든 채 기상하고 취침하며, 식사할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일할 때도 옆에 놓아두고, 산보할 때도 가져 다닌다. 일단 시작한 독서는 끝날 때까지 잠시도 중단하려 하지 않는다. 그 뿐이 아니다. 그들은 책의 마지막 쪽을 읽고 일어서자마자 당장 다른 책을 찾아 걸신들린 것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다닌다.”
그렇다면 오늘날 세계가 처한 독서의 현실은 어떤가? 필사(筆寫) 문화의 역사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 아르만도 페트루치는 독서 문화의 양극화를 걱정한다. 영화, 텔레비전, 전자게임에 몰두하고 독서에는 부차적 관심밖에 기울이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과, 질 높은 공연 예술을 감상하고 독서에 기초를 두고 있는 소수의 문화 엘리트 사이의 간격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극화 속에서, 확신을 갖고 열심히 독서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독자, 즉 유력한 독자 혹은 양질의 독자는 소수에 불과해진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고급 교양 독자라고 할까? 미국 출판인들 상당수가 미국 인구 2억3천600만명 가운데 그런 독자는 1만5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추정한다. 페트루치의 다음 말을 들어보면 마치 우리 현실을 얘기하는 듯 하다. “현재 수가 줄어드는 이른바 유력한 독자는 시종일관 책에 대해 확실한 기호가 있다. 그들은 훌륭한 책을 많이 읽고 있으며, 모든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안정된 독자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수가 적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출판사 오너가 그들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독서양극화…찾아 읽는 양질독자 소수
이른바 정전(正典)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독서의 질서가 무너지고, ‘내가 읽고 싶은 것을 읽는다’는 게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린 것도 오늘날의 현실이다. 책을 사색하고 배우고 존중하고 기억해야 하는 텍스트로 보느냐, 아니면 소비하여 없애거나, 아무 곳에나 두어 잃어버리거나, 심지어 한 번 읽고 던져버리고 하는 일회용 물건으로 보느냐? 아무래도 후자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편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페트루치가 말하는 양질의 유력한 독자라면 반드시 갖추어 둘 필요가 있다.
표정훈/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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