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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애니메이션. 전 한겨레 만평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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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년을 살아야 하는 이유 진달래야 어쩌자고 이토록 피어 날 못견디게 하니? 개나리야 어쩌자고 날 간질여 놓아 못견디게 하니? 진달래가 피면 진달래를 그려야 하고 개나리가 피면 개나리를 그려야 하고 목련이 피면 목련을 그려야 하고
민들레가 피면 민들레를 그려야 하고 고들빼기가 피면 고들빼기를 그려야하고 무우꽃이 피면 무우꽃을 그려야 하고 배추꽃이 피면 배추꽃을 그려야 하고… 그러니 내가 천년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겠지? 그러니 꽃들아 내가 천년을 살도록 하느님께 속삭여 주렴. 이러구 있는데 또 매화가 피었다. 독자 여러분은 내가 전에 얘기 한 대로 벚꽃이 어떻게 피게 되는지, 그러니까 버찌새가 앉으려다 ?緻吠봉 터져 벚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았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매화는 피는 방법이 좀 다르다. 매화 가지에 물이 올라 아주 겨드랑이가 간질간질 할 때 쯤이면 매화가지는 무언가를 숨죽여 기다린다. 무엇일까? 그것은 가지 아래를 지나가는 어여쁜 처녀이다. 처녀가 지나가다 문득 매화 가지의 봉긋한 봉오리를 보고 아아! 탄성을 지르며 붉은 입술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 그 때 매화는 그 붉은 입술과 하얀 이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있던 처녀가 갈길을 어쩔 수 없어 머리채를 바람에 날리며 아쉽게 고개를 돌리면 그때 매화꽃잎도 같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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