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원하던 ‘우리나라 좋은 오케스트라’ 키워가니
‘찾아가는 시민공연’ 7일간 강행군에도 “대만족”
음악 배우는 학생 많아도 듣는 사람 적어 아쉬움
위대한 작곡자들 하늘, 자신은 땅이라는 ‘거장’
음악에 순명하며 음악이 되어 가고
권은정의 인터뷰 무제한/서울시향 예술감독 정명훈씨 마에스트로 정명훈(53)씨는 좀 부루퉁한 표정이었다. 사진으로는 늘 활짝 웃는 모습이었는데…. 알고 보니 연주회가 있는 날은 예민해져서 사람만나 이야기하기를 썩 내켜하지 않는단다. 게다가 바로 앞서 한 방송국에서 카메라 들이밀고 인터뷰를 한데다 점심식사도 아직 못했다고 한다. 나를 잠깐 만난 다음은 바로 리허설…. 마음 같아서는 물러나고 싶었지만 그와 스케줄을 맞추려고 쏟아 부은 오랜 노력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를 십여년 전 런던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다. 바비칸센터 음악홀에서 그가 런던필을 지휘하던 날, 연주회가 끝난 뒤 다른 청중들과 마찬가지로 감격한 나는 무대 뒤로 달려가 인사했었다. 그때 난 몹시 떨려서 모기만한 소리로 인사를 했었는데 그동안 세월의 힘을 내공으로 삼아 이번엔 목소리가 커졌다. 참, 그는 인터뷰 시작 전에 어려운 말로 묻지 말아달라고 했다. 일곱 살 때 미국으로 가서 45년간 외국 여러 곳에서 살았지만 그는 우리말을 썩 잘하는데다 더없이 좋은 내용으로 채우건만 정작 본인은 우리말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뭐, 나도 딱히 어려운 말을 많이 아는 실력이 아니어서 괜찮았다. 그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예술 감독으로 부임한 지 1년이 되었다. 그는 순식간에 오케스트라를 변모시켜 놓았다. 요즘 서울시향의 연주를 들어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잘한다. 이틀 전 세종문화회관 연주 때 청중들의 박수는 끊어질 줄 몰랐다. 그는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 “오케스트라가 아주 잘했어요. 바르토크의 그 곡이 얼마나 힘든데….” 그의 연주 일정표는 무지무지 빡빡하다. 7일간 연이어 강행군이지만 그는 전혀 지친 표정이 아니다.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아주 잘 맞고 있다는 징표인 듯하다. “너무 잘하고 있어요. 모두 열심히 하고 이렇게 태도가 긍정적인 오케스트라는 처음이에요. 매일 할 때마다 서로 더 잘 알게 되고 또 음악적으로 가까워지게 되니 발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가 이끌어온 세계 유수의 악단을 이 지면에 열거하기란 물리적으로 힘들다. 지금도 서울시향만 돌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와 일본 등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를 열렬히 원하고 있다. 고국의 악단을 키우는 일이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이렇게 긍정적인 단원들 처음 “사람이란 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하고 열심히 한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어요. 제가 한평생 지휘자로 살면서 제일 원한 게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오케스트라가 나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누구 혼자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작년에 서울시에서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것이지요. 전혀 생각하지 않던 것을 갑자기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 사실 이런 일을 하려다가 포기했었는데 말이지요. 제가 아니라 더 멀리잡고 다음 지휘자가 나오기를 기다렸었지요.” 오케스트라는 나무를 키우듯이 함께 가꾸어 가는 일임을 늘 말해 온 그가 다시 강점을 찍는다. “기초를 단단하게 해서 시작해야 합니다. 잘 나가다가 무너져서 다시 또 시작하는 그런 일이 없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를 만나기로 하고 내가 처음한 일은 서점 요리책 코너로 달려가 그의 요리책을 집어든 것이었다. 한두 해 전인가 나온 책에는 그가 식구들과 먹던 식단을 선보였는데 가만히 보면 그의 내면이 읽혀지는 부분이 많다. 요리야말로 그에게 삶의 균형을 일깨워 주는 것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요리책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가 미소를 짓는다. “그게 참, 자꾸 하라고 해서…. 그냥 재미로 한 거지요. 그런데 좀 창피하지요. 진짜 요리사가 봤으면…. 하하하” 연주여행이 아니고 집에 있을 때면 주방은 언제나 그의 차지란다. 음악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는 요리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이다. “한국 가족생활이 남자들은 일하러 밖에 나가고 부엌에는 여자들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강하잖아요. 아이들한테 해서 먹이고, 그게 얼마나 재밌는 일인데…. 사람들은 취미를 일부러 찾는데 저는 저절로 그게 생겼어요.” 음악과 요리밖에 할 줄 몰라 모든 남자들이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했더니, “사람들이 다 다르지요. 저는 음악하고 요리 두 가지 빼고는 잘하는 게 없어요. 아니 할 줄 아는 게 없다니까요, 정말로. 컴퓨터도 못해요. 이메일도 못해요. 하루 종일 음악공부하고, 공부할 때 머릿속에는 음악뿐이지요. 지휘하는 게 소리를 못 내니 어떤 면에서는 답답하지만 전체를 공부하니 재밌고 아무데서나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아요. 걸어 다니면서 공원에서…. 어디서든 음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요.” 그는 그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인간적 순수에 가까이 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일상의 작은 것,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의 귀함을 알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음악으로 거칠 것 없는 경지에 오른 그가 정작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무시하는 ‘아주 작은 것들’이 아닌가. 그가 더욱 더 매력적인 이유다. 올해 1월부터 시작한 그의 ‘찾아가는 시민공연’의 행진은 음악의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다. 구청 건물이나 대학 강당이나 큰 교회, 어디든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오케스트라가 간다. 평소 클래식 공연의 담 밖에만 살던 이들까지도 아이를 앞세우고 생전 처음으로 구경을 나왔으리라. “저는 음악가로서 큰 책임이 두 가지 있는데, 훌륭한 작곡가들이 쓴 음악을 그들이 원했던 뜻대로 잘 이해하고 공부해서 좋은 음악이 나오도록 하는 일이고, 또 그 음악을 여러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한국에는 음악 공부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그에 비해서 음악을 들으러 가는 사람의 수는 그렇게까지 많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우리 시향에서 이번 공연을 하는 이유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 음악을 겁내는 이들에게 음악은 힘든 게 아니라고 말해주려는 것이지요. 훌륭한 음악이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들어도 너무 좋은 음악이거든요, 겁내지만 않으면. 그 대신 다른 것과 달라서 점점 더 들을수록, 알수록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음악으로 순수한 경지를 자신의 지향으로 하여 살고 있는 그는 그 기반을 진정한 아마추어 정신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는 피아니스트로서는 오래 전부터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로 돌아왔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음악이란 마음에는 아마추어로 계속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책임 맡은 일도 많고 워낙 바쁘게 살다보면 늘 그러기가 쉽지 않지요. 저는 나이 60이 되면 이 일을 그만하겠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이런 프로페셔널한 일이 아니라 뭐를 하든 순전히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누구를 위하든 무엇을 위하든 도움이 되는 뜻있는 연주를 하겠다는 말이지요.” 정명훈, 그를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가 얼마나 겸손한 인물인지 감탄한다고 한다. 그 얘기를 했더니 그가 약간 화난 듯이 말한다. 겸손하지 않고 달리 다른 방법이 또 있을 수 있느냐고 묻는 듯하다. “제가 음악가이지만 이런 굉장한 작곡가들하고 비교하면 상대가 안 되지요. 하늘과 땅 차이죠. 어떻게 내가 잘났다고, 그럴 수가 없게 되거든요. 그럴 수가 없어요. 음악을 할수록 더 겸손해져요. 음악이 워낙 훌륭하기에 인간을 점점 더 겸손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음악이 그래서 특별히 밸런스(균형)가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문화적 수준을 진정으로 더욱 높일 수 있게 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게 소명 “옛날 50년 전, 혹은 불과 20년 전과 비교해도 지금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하고 있지요. 전에는 공부하려면 외국에 으레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외국에서 제대로 공부하는 이들이 돌아오고 싶어 해요. 저도 그렇지요. 이제 여기도 아이들이 충분히 공부할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어요.
|
권은정/전문 인터뷰어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