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13 19:03
수정 : 2006.04.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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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자리출판사 <오직 할 뿐:내가 만난 숭산 대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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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이책
“나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몸에 의지하지 말라. 우리 모두 모르는 곳에서 왔다가 모르는 곳으로 간다. 오직 모를 뿐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숭산 큰 스님은 재작년 11월에 입적하셨다. 눈 푸른 현각 스님을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진 숭산 큰 스님은 한국 불교계에서 해외포교에 관한 한 독보적인 존재로 꼽힌다. 1970년대 미국에서 한국 이민자 중심의 포교에서 벗어나,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포교활동에 힘써 한국의 선불교를 널리 보급했기 때문이다. 입적 당시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위원이 보내온 추도 서신을 통해서도 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숭산 대선사는 젊은 시절부터 전 세계에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새로운 혁신을 일으켰고, 케임브리지 선원을 비롯해 각 나라에 100개가 넘는 선원을 건립해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와 고요를 심어줬다.”
<오직 할 뿐:내가 만난 숭산 대선사>(무량, 무심 외 지음)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숭산 스님의 제자들이 스승과의 만남을 추억하며 쓴 글들이다. 숭산 스님은 40여 년 한국의 선불교를 세계 각지에 포교한 이래 현재 세계 32개 국 120여 개 홍법원이 개설되어 5만여 제자들이 수행 정진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전통적인 한국 사찰 ‘태고사’를 건립하여 화제를 모았던 무량 스님, 전 화계사 국제선원장 무심 스님, 베트남 전쟁 세대로 반전운동을 하다 숭산 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대봉 스님, 흑인 인권운동을 하다 숭산 선사의 법문을 듣고 충격과 감동을 받고 출가한 무상 스님 등 제자들의 약력은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삶을 살다 출가한 제자들이 풀어 놓는 에피소드들 또한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반짝이는 눈과 스승다운 면모를 지닌 네모나고 단단한 모습을 한, 전적으로 선사의 모습 그대로였던 스님. 공항에서 나오는 버스 속에서 스님은 그냥 잠을 자 버렸고, 호텔 방에서는 룸서비스가 방정리를 하고 있는데도 잡지를 들고 툭툭 털어내기도 하셨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숭산 스님의 해외포교 초기시절로 가는 듯하다. 제자들 외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사 마하 거사난다, 잭 콘필드 등이 풀어낸 만남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에도 많은 독자가 있는 잭 콘필드는 숭산 선사를 이렇게 회상한다. “선사님의 모를 뿐인 마음과 우주적 에너지는 서양의 선(禪)에 특색과 영혼, 그리고 생명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숭산 스님이 고봉 스님을 통해 치열한 수행과정을 겪으며 마지막 공안까지 막힘없이 대답하자, 고봉스님은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꽃이 피었는데, 내가 왜 네 나비 노릇을 못하겠느냐?” 책의 마지막 부분에 사진과 함께 실려 있는 숭산 스님의 일대기는 숭산 스님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인생의 나침반을 얻는 기쁨을 주고, 숭산 스님을 그리워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시 한 번 새로운 감동이 되어 줄 것이다.
“그대가 무엇을 하더라도, 오직 할 뿐!”
살다보면, 삶의 나침반 같은 것이 있어 헤매지 않게 좀 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질 때가 있다.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이란 말로 요약되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담긴, <오직 할 뿐:내가 만난 숭산 대선사>와 함께 <오직 모를 뿐:숭산 대선사의 서한 가르침>을 통해 변화의 물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하는 이들이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면 ‘안 아깝다, 이 책’이 될 것 같다.
권미경/물병자리출판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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