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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문답
홍대용 지음. 이숙경·김영호 옮김. 꿈이있는세상 펴냄. 9000원 |
18세기 영·정조 시대 대표적 실학자 홍대용
지동설·중력설 등 근대 우주론 설파하고
인간중심주의·중화주의 세계관 부정하는
파격적 행보로 지배계급한테 배척 당해
절친한 벗 연암만이 ‘당대 최고 인재’ 죽음에 절망
연암 박지원의 산문 ‘홍덕보 묘지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중국가는 사람을 보내고 난 뒤 나는 (중국)항주사람들이 덕보에게 보낸 서화며 서로 주고받은 편지와 시문이며 이런 것 열 권을 손수 찾아내어 빈소 옆에 벌여 놓고 관을 어루만지며 통곡하였다. 아아! 덕보는 통달하고 명민하고 겸손하고 고아했으며, 식견이 심원하고 아는 것이 정밀하였다. 특히 율력에 정통하여 그가 만든 혼천의 등 여러 기구들은 깊이 생각하고 오래 궁구하여 슬기를 발휘해 제작한 것이었다. 애초 서양인은 땅이 둥글다는 것만 말하고 회전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덕보는 일찌기 지구가 한 번 돌면 하루가 된다고 논했는데 그 이론이 미묘하고 심오하였다. 그는 미처 이에 관한 책을 쓰지는 못했지만 만년에 이르러 지구가 회전한다는 사실을 더욱 자신하여 의심치 않았다.”(박희병 <연암을 읽는다>)
덕보는 18세기 조선 영·정조시대 실학자로 북학파의 선두주자 홍대용의 자다. 호는 담헌. 1731년(영조 7년)에 태어나 1783년(정조 7년) 만 52살에 세상을 떠났다. 연암(1737-1805)과 동시대인이요 절친한 벗이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연암은 절망하고 비통해했다. 연암이 홍대용의 지구 자전설을 언급하면서 “미처 이에 관한 책을 쓰지 못했지만”이라고 한 것은 착오이거나 홍대용의 만년작이자 대표작인 <의산문답>을 읽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의산문답>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무릇 땅덩이는 하루에 스스로 한 바퀴를 도는데, 땅 둘레는 9만리이고 하루는 12시간이다. 9만리 넓은 둘레의 땅이 12시간에 도는데, 그 속도는 번개나 포탄보다도 더 빠른 셈이다. 땅이 이처럼 빠르게 돌기 때문에 허공의 기가 격하게 부딪치면서 허공에서 쌓여서 땅에 모이게 된다. 이리하여 상하의 세력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면의 세력 즉, 땅이 끌어당기는 힘이다.”
9만리는 실제 지구 둘레 약 4만㎞에 근접한 수치이며, 12시간도 자시·축시·인시 등 12지에 근거한 시간개념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당시의 과학지식으론 역부족일 수밖에 없어 모호하긴 하지만 중력의 존재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개념은 지구가 그토록 엄청안 속도로 돌아가는데 왜 사람과 만물이 풍비박산하지 않으며 둥근 지구 표면에 붙어 있는 사람들이 왜 떨어져 나가지 않고 달과 별이 아래로 곤두박질하지 않는지 등으로 이어지는 <의산문답> 우주론과 세계인식론에 토대가 된다. 그것은 또한 우주무한설과 인간세상 가치들의 덧없음, 지구 및 인간중심주의 부정, 음양오행설 부정, 중화주의 세계관 부정으로도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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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이 1766년 중국 연경(베이징)에 60여일간 머물 때 사귄 중국 선비 엄성이 지은 <철교전집>에 실려 있는 담헌 초상화. 왼쪽은<담헌서>. 사진 꿈이있는세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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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문답>의 ‘의산’은 조선과 중국의 경계였던 만주 요녕성 북진현 서쪽의 ‘의무려산’을 가리킨다. 담헌은 35살이던 1766년 서장관이었던 숙부 홍억을 따라 연경(베이징)에 가서 60여일간 머물렀는데, 그때의 체험이 이 책의 집필동기가 됐거니와, 의산은 그 여행길에 거치게 되는 곳이고, 책 속의 주인공들인 ‘허자’가 ‘실옹’을 만나러 가서 ‘문답’을 벌인 곳이다. <의산문답>은 그 가공의 인물들이 자연·우주와 세상사에 대해 주고받은 문답집이다. 꿈이있는세상이 펴낸 <의산문답>은 여기에 이 고전 걸작을 오늘의 관점에서 어떻게 읽고 응용할 것인가를 고민한 출판사와 역자들의 문제의식을 강하게 녹여넣은 책이다. E.H.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명제를 모토로 삼은 이들은 <의산문답>이 현재의 우리사회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치유를 위한 시사점을 찾는데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원서에는 없는 장·절 구분을 도입하고, 주를 붙이고, 지금 현실의 문제들과 당시를 대비하면서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글들도 따로 덧붙였다. 지금의 문제와 대비하며 읽어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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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헌이 만든 천문관측기구 혼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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