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4.20 20:36 수정 : 2006.04.21 14:10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
이정환 지음. 중심 펴냄. 1만2000원

골드만삭스는 국민은행서 9200억을
뉴브리지는 제일은행서 1조4천억을 벌고
칼 아이칸은 KT&G 경영권을 넘본다
국부약탈 참담한 세계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론스타와 그 파트너들의 국부 약탈작전 전모’라는 부제가 붙은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중심 펴냄) 제1장 제1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2003년 9월, 자산규모 62조6033억 원에 이르는 은행의 소유권이 단돈 1조3834억 원에 넘어갔다. 이 은행은 2년 반 뒤에 6조4180억 원에 다시 팔려나갈 전망이다. 환차익을 감안하면 론스타의 시세차익은 무려 4조5008억원에 이른다.”

론스타와 외환은행 얘기야 요즘 부쩍 매스컴을 타면서 새삼스러울 게 없는 얘기가 됐지만, 보통사람에겐 특히 조 단위로 올라가는 저 천문학적 액수는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을 것이다. 4조5천억 원이면 대체로 45억 달러 정도인데, 이 책이 인용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기사와 한번 견줘 보자.

“탄자니아와 골드만삭스의 차이를 아는가. 탄자니아는 1년에 22억 달러를 벌어서 2500만명이 나눠 갖는데, 골드만삭스는 26억달러를 벌어서 161명이 나눠 갖는다.”

아프리카 중동부 국가 탄자니아는 국토면적이 남한의 약 10배쯤되는 작지않은 나라다. 골드만삭스는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투자(투기)수익을 걷어가고 있는 미국 대형 투자은행이다. <가디언>의 보도는 좀 세월이 지난 것이겠지만 그 끔찍한 대비가 상징하고 있는 현실의 모순은 지금도 불변이다. 해소는커녕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모순은 점점 더해가고 있다. 탄자니아의 지난해 구매력지수(PPP)로 환산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00달러 정도였다. 북한의 지난 한해 총 수출액은 약 16억달러, 수입액은 약 24억달러였다. 45억달러면 북한의 연간 대외교역 총액보다 훨씬 더 많다.

론스타 차익 북한 한해 수출액의 3배


“2006년 3월 유가증권시장 상장 주식회사들이 주주들에게 나눠준 배당금은 모두 8조5878억 원.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가운데 42.9%에 이르는 3조6860억 원을 챙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3년 기준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기업 인수와 증권투자를 통해 챙긴 이익은 모두 7조5000억 원에 이른다.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1998년부터 따지면 모두 150조 원 이상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가져가는 꼴이다.”

150조 원이면 1500억 달러다. 탄자니아의 지난 1년간 국내총생산은 268억 달러.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란 본질적으로 기껏 몇백명이 웬만한 국가의 몇천만 인구가 1년 내내 일해서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손에 쥘 수 있는 재화(돈)를 단 몇건의 투자(투기)로 간단히, 그리고 합법적으로 빼앗아갈 수 있도록 세상의 모든 제도와 규칙을 그 몇백명이 요구하는 식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 결과 피할 수 없는 야만적 약탈에 대한 면피용으로 그 몇백명이 내세울 수 있는 궤변 내지 윤리·도덕적 가식은 이런 뻔뻔한 주장일 수밖에 없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너희들도 그렇게 하면 될 것 아냐!”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수 등 국제금융자본들의 천문학적인 한국내 각종 투자(투기)사업에 법률자문 등으로 직접 참여했을 뿐 아니라 광범위한 금융인맥 네트워크를 토대로 외국자본의 한국진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장 법률사무소.
어쨌든 미국 군수자본 칼라일 그룹(그리고 JP모건)은 그렇게 해서 한미은행에 4900억 원을 투자해 6200억 원을 벌었고, 독일 알리안츠 그룹은 하나은행에 1263억 원을 투자해 3000억 원을, 골드만삭스는 국민은행에 투자해 투자금의 두배가 넘는 9200억 원을 뽑아냈으며, 미국 사모펀드 뉴브리지캐피털은 5000억 원에 제일은행을 인수하고 1조6532억원의 공적자금을 정부한테서 받아내 그 투자이익이 1조4000억원에 달했다. 그런 식으로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를, 매틀린패터슨이 오리온전기를, 씨티뱅크가 한미은행을, BIH(브릿지 인베스트먼트 라부안 홀딩스)가 브릿지증권을, 다시 론스타가 극동건설을, 로스차일드펀드가 만도기계를 주물럭거리며 천문학적인 횡재를 했다.

책은 이처럼 외환은행 불법매각사건 전말에 이어 투기자본들의 다양한 국부약탈 사례들을 분석한 뒤, 투기자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여러 현상들을 짚어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살핀다.

“국수주의적으로 생각하지 맙시다. 외국자본은 다 악이고 국내자본은 선이다, 이런 시각 문제 있습니다. 외자유치 해달라고 난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투기자본을 문제 삼습니까. 문제는 많지만 막말로 그놈들 하나 빠져나간다고 해도 전체 시장에 별 영향은 없습니다.” 브릿지증권사태를 전담한 금융감독위원회 증권감독과 배준수 사무관은 그렇게 말했다는데, 저자 이정환이 발로 뛰며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들 앞에 서면 그런 얘기가 일리야 있겠으나, 얼마나 한가한 얘긴지, 얼마나 본질과 동떨어진 얘기며 때로 위험천만한 얘기일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론스타와 관련해서는 ’외환은행은 헐값 매각된 것이 아니라 불법 매각된 것이다. 김&장을 중심으로 한 파워엘리트들의 담합 의혹을 파헤치는 것이 외환은행 불법 매각 사건 수사의 핵심이다는 게 저자 이정환의 확신인데, 1장7절의 ‘김&장과 론스타, 칼라일, 소버린, 골드만삭스’를 보면 법률회사 김&장의 고문으로 재직한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를 중심으로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이영희 수출입은행장, 최경원 전 법무장관,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역시 김&장 고문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한덕수 현 부총리 등과 이들과 이어진 금융감독위원회 등 요소요소의 즐비한 인맥들 행적이 자못 흥미롭다.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두루 만난 사라들도 그들 중에 여럿이다. 그는 당시 칼라일 고문이기도 했던 박태준 당시 국무총리도 만났는데 칼라일아시아 회장 김병주씨는 바로 박 전 총리의 사위였다. 국제금융자본 로비스트로 전락한 그들의 엄청난 성공이 곧 국가의 참담한 실패일 수 있는 현실을 확인하기가 고통스럽다.

외국자본 95%가 단기 투기자본

또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자본의 95%가 단기투자이익을 노린 투기성 자본이고 삼성전자 주식의 외국인 보유비중이 53.4%, 포스코 68.40%, 현대차 46.11%, 국민은행 84.94%(은행평균 59.94%, 주식시장 전체평균 약 40%)인 현실에서 주식시장이 오히려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국부의 해외유출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이정환의 생각인듯하다. 그렇게 보면 론스타 사태는 단기차익에 목매는 이런 주주자본주의, 그리고 회계법인과 법무법인, 상당수 정치인과 관료들마저 사실상 국제금융자본의 로비스트가 돼가고 있는 ‘투기자본의 천국’, 한국사회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