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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전사-18세기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만3000원 |
근대라는 ‘사유의 감옥’을 열기 위해
‘탈근대의 바다’ 속으로 탐사
푸코가 근대성의 지축을 흔든 전사라면
연암은 그 위를 사뿐히 날아오른 나비
둘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만나는 지점이 오늘 여기
연암 박지원은 요동의 광야를 마주하자 탄성을 터뜨린다. “아 참 좋은 울음 터로구나. 한번 크게 울어볼 만하구나.” 말이나 수레 대신 기차를 타는 시대, 끊임없이 ‘사이 공간’ 속으로 새는 <열하일기> 같은 여행기는 없다. 기차가 여행자와 공간 사이의 긴밀하고도 내적인 관계를 파괴하는 탓이다. 하지만 <열하일기>를 더듬는 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여로에는 과거-현재-미래는 더이상 일직선 상에 있지 않은 까닭이다.
<나비와 전사>(휴머니스트 펴냄)는 지은이 고미숙이, 연암이 펼친 드넓은 사유의 세계에서 사이 공간을 오가며 크게 울어보고자 한 결과일 터이다.
지난 10여년간 연암을 비롯한 고전문학 텍스트, 동아시아의 근대담론, 푸코와 들뢰즈·가타리 등 탈근대 사유와 마주쳐온 지은이는 ‘근대는 스스로 구원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 이른다. 여기서 지은이는 근대성을 “신분질서에서 해방된 중세인들에게 민족과 학연, 지연, 가족, 순결, 원죄 등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고향)을 부여해주는 기제”라 본다. 하여, 지은이는 근대를 ‘탈근대의 바다’로 밀어넣기로 하고 근대 이전 동아시아 지성사와 겹치는 순간(주로 18세기)을 포착하기로 작정한다. 미래를 과거에서, 과거 속에서 미래를 보고, 그럼으로써 현재가 딛고 선 대지를 흔들고자 한다. 지은이는 고고학적 탐사를 무기로 근대성의 지축을 뒤흔든 ‘전사’ 푸코와 그 위를 사뿐히 날아올라 종횡으로 누비는 ‘나비’ 연암을 교직하며 ‘오늘, 여기’의 이야깃거리를 풀어놓는다. 말하자면 지은이는 시간의 선분성을 해체하여 근대라는 사유의 감옥을 여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전체구성은 시공간, 인간, 성, 몸, 앎, 글쓰기의 순서로 되어있고 각각의 테마는 입구와 출구가 달렸다. 입구에서는 ‘오늘 여기에서의 삶’의 이야기를 물음으로 던지고, 출구에는 ‘미래 거기의 삶’으로 날아가는 비전을 담았다. 지은이의 손끝을 따라 눈길을 옮겨가 보자.
20세기 기차와 함께 속도의 파시즘이 상륙했다. 철도는 넓은 신천지를 열었지만 이질적인 공간을 이어주던 ‘사이 공간’을 없앴다. 사이성의 소멸로 인해 대상과 대상 사이의 위계가 설정되고 주인-노예의 관계가 이뤄졌다. 우주와 소통할 길도 모두 차단됐다. 진화론 역시 ‘기차의 세계관’. 철저한 경쟁, 우승열패의 신화가 판을 칠 뿐이다. 빠른 것은 선, 느린 것은 악.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또는 ‘새역사를 창조하자’는 모토의 바탕도 이것이다. 결국 철도의 상상력을 넘어야 근대너머 또는 이후를 사유할 수 있다. 출구는 느림 또는 시간의 유목주의.
한국 근대의 중심은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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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이란 허공을 가득 메우는 대기 같은 것. 다만 우리는 그 사이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그 흐름을 절단 채취할 수 있을 뿐이다. 연암은 말한다. 자유롭게 비상하는 나비가 되거나 용맹하게 전장을 누비는 전사가 되라고. 그림은 조선시대 나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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