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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0 21:11 수정 : 2006.04.21 14:11

우리역사 과학기행
문중양 지음. 동아시아 펴냄. 1만3000원

조선함대 주력 판옥선에 덮개 씌운 것일 뿐
박정희 정권의 식민사관 결과 과학자 출신 국사학자 통설 뒤집기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 아니다.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던 천문대가 아니다. 한글 자음은 발음기관의 형상을 본뜬 게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왕따를 당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한테서 욕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하고 말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 그것도 ‘국립’ 서울대 국사학과 문중양 교수다. 그런데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우리역사 과학기행>(동아시아 펴냄)은 유난히 머리말이 길다.

“우리는 근대과학의 개념과 범주를 통해서 과학을 이해하고 전통과학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전통과학 패러다임과 서구 근대과학의 패러다임이 다르다는 것. 전통과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근대과학이라는 필터를 제거하고 특정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들여다 봐야 한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과학에서 현대과학과 유사한 형태의 것만을 주목하고 찾으려 한다. 그리하여 현대과학과 유사한 자연지식이 많이 등장하는 시대를 전통과학이 발전했던 때로 이해하며, 그것과 다른 자연지식들은 반과학으로 여긴다.”

현대인의 입맛으로 과거를 보지 말라는 게 요지. 기왕에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내용이 들어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거나 싫으면 아예 읽지 말라는 ‘사용설명서’다.

문약한 조선사회에서 돌올한 영웅 이순신과 짝한 무적의 철갑 거북선은 일본인 학자들이 만들고 박정희 군사정부가 강화한 식민사관의 결과다. 실제 거북선은 조선함대의 주력인 2층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것일 뿐. 기동성과 위력에서 판옥선에 미치지 못하고 일본 수군의 전열을 흐트러뜨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위력의 바탕은 어디까지나 기왕의 판옥선과 우수한 화약무기다. 임진왜란 중 3~4척만이 제작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첨성대는 어떤가. 이름이 지니는 사전적 의미(별을 보는 구조물) 외에 ‘천문에 대해서 묻던’ 구조물이었다는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천문을 관측했다’로 이해한 결과 현대적 의미의 천문대로 와전됐다.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의 ‘설’을 중국과학사학자 조지프 니덤이 받아 쓰면서 정설로 굳어졌다는 것. 첨성대는 외양과 구조로 보아 불교적 제단, 혹은 토속적 염원을 담은 조영물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화낼 것 없다. 고대 천문대의 역할이 천문 관측이 아니라 천문을 물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입술, 혀, 목구멍 등 애매하고 복잡한 모양에서 추상적인 도형인 문자를 도출해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한글은 옛 전서체나 파스파문자, 또는 <육서략>의 내용을 참고해 만들었기 십상이다. 그 다음에 제자 원리를 발음기관과 천지인의 형상에 빗대 이론화했을 것이다. 가설형태로 얻어진 다음 이론화 작업이 뒤따라 과학법칙으로 성립하듯이. “불쌍한 백성이 뜻을 펴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그렇다. 속내는 조선 개국 초 ‘성인의 도’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한자음을 정확히 표기할 필요 때문이었다.


지은이는 특히 지도의 세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직방세계’를 다룬 전통 세계지도가 조선후기 과학적인 세계지도 못지 않게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또 신비스럽고 미신적이기까지 한 원형 천하도를 통해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보고자 하며, 천문학적으로 아무런 과학적 가치도 없는 서양 천문도와 전통 천문도의 혼합에 불과한 ‘혼천전도’를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앙부일구, 수원 화성, 혼천시계에 대한 꼼꼼한 점검에서 과학자 출신 국사학자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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