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27 19:43
수정 : 2006.04.2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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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축과 비표상
정인하 지음, 아카넷 펴냄.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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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독서
거장 리베스킨트가 90년대 설계한 독일 베를린 유대박물관은 파천황적 외관으로 유명해졌다. 위에서 본 건물은 불규칙한 선이 중첩되는 추상 드로잉 같다. 근대 건축의 입방체 공간과 정연한 창들은 간데없다.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나치시대 베를린 유대인 거주지의 동선들을 이은 파편같은 선들로 건물덩이를 빚고, 채광 기능과 동떨어진 찢긴 들창으로 잔 윤곽을 지었다. 시설물이 아닌 옛 기억의 저장고가 된 것이다.
<현대건축과 비표상>은 리베스킨트처럼 60년대 이후 공간의 해체에 골몰해온 현대 건축가들의 사상적 저변을 풀이한 개설서다. 저자는 자연 등 외부 요소를 재현하지 않는 ‘비표상성’을 60년대 이후 현대건축을 규정짓는 열쇠말로 푼다. 그 인식의 배경엔 피부처럼 숨쉬는 건축, 기억을 들추는 건축, 표면이 요동치는 건축 따위의 전위적 구상들이 숱하게 현실화하는 혼돈의 현실이 가로 놓여 있다.
장소와 기능을 우선시하던 건축은 60년대 이후에야 장르 자체의 자율성을 내세우는 흐름으로 접어드는데, 들뢰즈, 데리다, 푸코 같은 프랑스 해체주의 사상가들이 대부 구실을 했다는 게 저자의 논지다. 격자형(그리드)로 대표되는 기하학 구성, 닫힌 이상에 집착하는 역사주의 등으로 포장한 채 주거 유토피아를 추구했던 근대건축이 주체 중심의 근대 시선에 대한 회의감 속에 산산조각난 전말을 해체주의와의 연관 속에서 찾은 것이다. 공간에 작용하는 가상의 힘들과 의미, 생성, 차이 등에 대한 통찰이 건축공간에 투영되었다는 말이다. 당연히 저자의 눈길은 들뢰즈의 ‘주름’, 데리다의 ‘차연’ 등 철학, 예술의 비표상 개념들이 램 쿨하스, 아이젠만, 프랭크 게리 등의 건축거장들에게 미친 영향을 집요하게 훑는다. 그 대표적 산물인 텍스트, 다이어그램, 랜드스케이프 따위의 포스트모던한 건축 어휘들이 정연한 설명과 함께 소개된다. 최근 첨단 건축 트렌드에 대한 기본 개념들을 요점 정리한(여전히 난해한 직역투지만) ‘해법 건축사 강의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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