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8 16:34
수정 : 2005.02.18 16:34
“경박한 실험·유희적 글쓰기 옹호하는 비평집단 있다”
“언젠가부터 사회·역사적 상상력으로부터 탈각된 사소한 일상과 자폐적 내면, 문학과 대중문화와의 접속이 마치 우리 시대의 새로운 문학적 탈출구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탄탄한 미학적 긴장에 뿌리내리지 않은 경박한 형식실험과 탈현실적 포즈가 과대평가되고 있다. 치열한 장인정신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유희의 글쓰기로 대체되고 있으며, 이러한 일련의 문학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비평집단이 새롭게 형성되었다.”
이번 봄호로 통권 9호째를 맞은 계간지 〈문학수첩〉에는 ‘혁신호를 내면서’라는 제목의 머리말이 실렸다. 2003년 봄호로 창간됐던 이 잡지는 올 봄호부터 편집 진용을 바꾸어 새로운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권성우, 박혜영, 방민호, 유성호씨 등 소장 평론가들이 새 편집위원들이다.
앞서 인용한 머리말에서도 보다시피 혁신호 〈문학수첩〉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사회·정치적 상상력의 회복이다.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80년대 문학과의 차별성을 과도하게 내세우면서 사회와 역사를 부당하게 괄호쳐 버렸다는 문제의식의 결과다.
편집위원을 대표해서 권성우씨가 쓴 머리말에서 언급한 ‘비평집단’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銹뮷?煊?역시 권씨가 쓴 〈문학을 넘어서는 문학의 길〉이라는 제목의 글은 좀 더 분명하다. 권씨는 류보선씨와 “그의 문학동료들인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을 거명하면서, 90년대 문학에 대한 이들의 적극적 옹호에서는 “작품에 대한 단순한 애정 이상의 어떤 필사적인 노력이 느껴”진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이게도 권씨는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에 실린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글 〈근대문학의 종말〉을 근거로 〈문학동네〉 편집진을 공격한다. 가라타니에 따르면 “그 존재가 문학의 죽음을 역력하게 증명할 뿐인 패거리들이” “지금 문학이 건재하다고” 주장한다. 권씨는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을 비롯해서 현재 ‘문학번영론’을 전파하는 세력이 바로 가라타니가 말하는 ‘패거리’가 아니냐고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권씨는 구체적으로 지난 한해 평단의 찬사를 한몸에 받은 김영하씨의 장편소설 〈검은 꽃〉의 결함을 들추고, 반대로 “2004년에 출간된 평론집 중에서 가장 탁월한 비평집”인 김진석씨의 〈소외에서 소내로〉에 대한 평단의 침묵을 상기시키며, ‘주례사비평’과 ‘배제의 카르텔’이라는 한국 문단의 병폐를 꼬집는다.
같은 특집에서 유성호씨가 ‘기억’과 ‘자연’의 과잉과 관계론적 사유의 결핍을 현단계 한국 시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거나, 젊은 평론가 서영인씨가 90년대 문학을 가리켜 “문학 안으로 침잠함으로써 현실과 문학을 격리시키는 담론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지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권씨는 머리말에서 “정말 소중한 문제의식을 지닌 많은 필자들이 기존의 문예지 카르텔에서 배제당하고 있다”며 이들을 지면에 적극 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혁신호에 문화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 김진석씨와 임화에 관한 논문을 실은 이명원씨가 권씨가 말하는 ‘억압당한 목소리’들일 터이다. 〈문학수첩〉은 앞으로 김정란·김명인씨 등 그간 문학권력론을 적극 제기해 온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들을 필자로 동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호’ 〈문학수첩〉의 도전에 〈문학동네〉를 비롯한 기존 매체와 문학 유파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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